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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개론

패션디자이너, 디자인학과 등 필수 디자인개론 요점 정리 8. 근대 디자인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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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근대 디자인의 발전

 

가. 미술공예운동(Arts & Crafts Movement, 1837~1905)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최초의 근대 미술사조 운동으로, 영국의 산업혁명을 배
경으로 전통적인 수공예 요소가 사라진 기성품의 대량생산에 반기를 들고 중세의 직인
제도에 입각한 수공예 산업을 활성화시키고자 한 운동이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가구, 도자, 회화 등 거의 모든 영역의 상품들이 심미성을 잃고 질적으로 하향된 수준
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이에 윌리엄 모리스, 존 러스킨, 필립 웨브(Philip Webb) 등의
사상가, 건축가, 미술가 등이 모여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체제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수
공예품의 대중화를 선언하며 1888년 미술공예운동이라 불리는 활동을 시작했다. 윌리
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기계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공예의 시발점을 두고 있
다. 그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생산의 증가는 공예의 품질을 떨어뜨리므로 공인은 서민
을 위해 일을 하며, 손수 만드는 것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며, 예술에 의해서 사회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857년 필립 웨브와 공동으로 설계한 자신
의 레드하우스(Red House)를 세우게 되는데, 이것이 그를 디자인으로 향하게 하는 결
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861년 최초의 디자인 공방인 ‘모리스 마샬 포크너 상회’를 발
족하여 공장제 수공업 방식의 디자인을 고수한 벽지 디자인을 생산하였으며, 각종 수공
예품을 제작하여 인간미가 있는 숙련공의 공예품을 이용하도록 호소하였다. 이러한 미
술공예운동의 윌리엄 모리스는 당시의 혼란했던 조형양식을 통일하여 공예운동의 선구
자가 되었지만, 기계에 대한 반항과 지나친 수공예와 고딕양식의 찬미로 영국의 근대
디자인 운동을 반세기 늦추게 된다. 그 결과 1870년대부터 이들을 주류로 하는 동향과
병행하여 보다 세련되고 모던(Modern)한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유미주의 유파가 나타
나 아르누보 양식의 출현을 예고했다.
미술공예운동은 최초의 근대적 미술운동으로, 후에 아르누보, 데 스틸, 바우하우스 등
에 영향을 주어 근대적인 디자인운동 전개의 시발점이 된 운동인 것이다. 역설적으로는
기계문명을 찬양하고 장식성을 배제한 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주었으며, 후에 필립 존
슨 등으로 대표되는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에까지 영향을 주었으니, 미술공예운동의 평
가는 단순한 이념적인 성공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다.

레드하우스

나. 아르누보(Arts nouveau, 1880~1910)
아르누보 또는 유겐트슈틸(Jugendstil)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성행했던 유럽
의 예술 사조로서 아르누보는 "새로운 미술"을 뜻한다. 독일어권에서는 유겐트 잡지 이
름을 따서 유겐트 양식(유겐트슈틸)이라고도 불린다. 19세기 아카데미 예술의 반작용
으로 아르누보는 자연물, 특히 꽃이나 식물 덩굴에서 따온 장식적인 곡선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아르누보는 예술가가 건축에서 가구까지 삶의 예술에 관한 모든 부분에 대
해 작업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산업혁명에 의한 기술의 빠른 발달에 반대하여 수공예의 중요성을 강조한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의 사상에서 비롯되었으며, 미술비평가인 존 러스킨은 자신의 저서 ‘베니
스의 돌’에서 “모든 아름다운 미술작품은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자연의 형태를 닮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르누보는 1896년 파리의 프로방스 거리에 있었던 사무엘 빙(Samuel Bing)의 점포
디자인 양식을 반 데벨데(Van de Veld)가 곡선적 양식으로 디자인한 장식예술로서 이
양식은 건축, 공예, 조형, 디자인분야로 파급되어 유행하였다.
아르누보 양식 건축물의 특징은 커다랗게 반복되는 장식, 풍성한 식물 모티프 모양, 도
자기, 금, 유약, 색유리 가루들로 채워진 풍성한 장식을 꼽을 수 있다.
아르누보 양식은 사치스런 재료의 사용과 섬세한 디테일, 장인 정신 그리고 아름다운
물결모양의 곡선무늬에 있었다. 식물과 같은 유기적 형태에서 영감을 얻어내는 아르누
보는 역겨운 도시적 분위기가 제거된 머나먼 환상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곡선적인 화려
한 양식을 풍미하여 건축의 외관이나 일상 생활용품에 자연물의 유기적 형태에서 비롯
된 곡선적인 장식을 애용한 것이 두드러진다. 동식물의 형태를 모티브한 유동 적인 형
식을 사용하였고, 종래에 그다지 채용되지 않았던 담쟁이 덩굴의 감아붙인 모습과 수선
화, 단풍나무, 페릴컨, 백조, 학, 뱀 등의 장식 문양을 즐겨 이용하였다.

아르누보문양

세기말이라는 사회적 불안으로 인하여 점차 계급이 없어지고, 새로운 재료(철, 유리,
세라믹타일, 알루미늄)개발과 구조적 기술의 발달로 표현상의 자유를 얻었으며 이 새로
운 재료를 가지고 아르누보라는 건축양식을 표현하였다.
아르누보는 어떤 특정한 양식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운동으로 주요 요소는 형태의 단순
화, 공간의 평면화, 선의 활력, 여백, 이미지, 색상, 구성 등에서 상징주의적 성향을 띈다.
첫째 아르누보 양식은 자연물의 유기적 형태로부터 모티브를 찾아 양식화하여 장식미
술에 적용했기 때문에 양식적인 면에서는 비대칭적이고 생동적이어서 과거와 달리 새로운 감각을 부여하였다.
둘째 과거의 장식에서 탈피하여 혁신적인 탐색을 통해 모든 생활에 실용화하려 했으나,
작가의 개성과 장식 과다의 형태에 치우쳐 사치스럽고 환상적이며, 여성적이고 쾌
락적이기까지 한 곡선 과잉장식의 매너리즘(Mannernism)에 빠지게 되면서 비난을 받는다.
셋째, 과거의 역사적 양식으로 부터 탈피를 목적으로 하여 형태, 색, 장식, 용도, 재질
의 적합을 주장하였으나, 후기에는 구조를 무시한 변화 많은 장식에 치우쳐 있었
기 때문에 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에는 부적합하다는 문제점이 대두되었다.
넷째, 미술공예운동보다 발전적이라고 볼 수 없지만, 모리스 이념의 다른 한 측면이라
고 할 수 있으며, 새로운 미를 창조하려 했던 측면과 과거 양식에서 탈피하려 했
던 양식혁명의 정신에 커다란 역사적 의의가 있다.
다섯째, 비엔나의 '아방가르드(Avant Garde)' 운동에 영향을 주었으며, 비엔나 분리파
운동은 곡선적인 아르누보 양식에서 벗어나 직선적인 기하학적 양식으로 발전됨으로써 바우하우스의 기하학적 다자인에 이르는 역사적인 발전 단계로 평가된다.
여섯째, 새로운 시대의 일시적인 취미에 불과하였고 기계시대에 기능주의 전통이 정착
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밖에 볼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장식에서 벗어나지 못
하여 기계시대에서는 불가피하게 단명했지만, 생활제품의 실용을 위해서는 새
로운 양식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고, 현대 디자인의 또 다른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아르누보는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독일, 오스트리아에서는 세체션
(Sezession) 양식으로 발전하였으며, 미국에서는 건축과 공예에서 시카고파 사조의 계
기가 되었다. 조형예술분야의 알폰소 뮤샤, 쥴느쉐레(Jules Cheret), 툴루즈 로트렉 등
이 유명하다. 건축디자인에서는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는 당
시 카탈루냐 건축을 주도했던 고전주의 건축을 벗어나, 건조한 기하학 만이 강조된 건
축이 아닌 나무, 하늘, 구름, 바람, 식물, 곤충 등 자연의 사물들을 관찰했고, 그런 형
태들의 가능성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결과 그의 건축물은 기하학적인 형태들
외에도 곡선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내부 장식과 색, 빛이 조화를 이룬 밀라 주택, 바트
요 주택,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 건축물들을 건축했다. 공예는 스테인
드글라스 창문과 티파니의 유리공예품이 유명하다.

줄르쉐레의 그림
빨강머리의 화장하는 여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다. 분리파(Sezession)
분리파 혹은 세체션(Sezession)은, 19세기 말 독일과 오스트리아 각 도시에서 일어난
회화, 건축, 공예운동이다. 과거의 예술양식에서 분리하여, 생활과 기능을 연결한 새로운 조형예술의 창조를 목표로 삼았다. 이 운동은 직선적인 디자인을 특색으로 하고 과거의 모든 예술양식에서 분리하여 새로운 시대의 획기적인 공간조형을 지향했다. 이 운동의 특징은 과중한 장식 대신 직선미를 강조한 직선주의 조형과 기하학적 문양, 대조
적 효과로서 금색, 흑색, 흰색의 배합을 사용하였다. 또한 자연적 형태의 장식요소를
극도로 최소화하여 단순하고 기하학적으로 표현하였다.
1903년 호프만(Josef Hoffmann)이 창설한 비인공방은 생활을 예술적으로 통합시키
려는 생활개선운동으로 세체션 공예상의 최대 공적으로 평가 받는다.
분리파에는 특정한 예술이념이나 양식은 없었지만 예술경향과 국적을 초월하여 전위미
술에도 관대히 문호를 개방했다는 점이 공통되는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당초 인상주
의와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은 회화운동으로서 출발한 분리파의 성과는 오히려 현대건
축과 공예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분리파는 영국의 미술과 공예운동, 독일의 유겐트
슈틸 등과 더불어 근대공예와 건축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라. 독일공작연맹(D.W.D)
20세기 말 유럽과 미국에서 합리적인 디자인 모색이 활발하였고 새로 등장한 사조가
근대디자인을 조성하여 추상적이고 신조형주의적 예술사조를 탄생시켰다. 제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장식적이고 공예적인 디자인이 퇴색하고, 합목적성에 역점을 둔 기능
주의적이고 생산적인 디자인이 주류를 이루었다.
예술가나 건축가뿐만 아니라 공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는 실업가를 포함한 독일의 미술,
공업, 수공예 분야 의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규격화된 기계생산품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
디자인 진흥 단체가 결성되었다.
독일공작연맹(Deutsche Werkhbund)의 설립목적은 미술의 실제 생활화, 기계생산품
의 미적 규격화, 공예의 물질적인 전환, 제품제작에서 벗어나 기계 생산에 적합한 형태
를 찾는 것이며, 예술과 산업, 공예의 협동, 교육과 선전을 통해 공예작품의 품위를 높
이는 것이다. 특히 미술공예운동과 구분되는 점은 수공예와 함께 공업생산을 수용하였
고, 디자이너가 공업생산과정에 직접 참여하였다는 점이다.
1911년 헤르만 무테지우스(Hermann Muthesius)는 ‘독일 생산의 정신화’라는 주재아
래 공작연맹의 미학적 기조가 되는 주제연설을 통해 수공예정신 대신 공업생산의 개념
을 수용하는 쪽으로 공작연맹의 정신의 변화를 역설하였고 이를 계기로 공작연맹의 주
관심사는 ‘품질’에서 ‘형태’로 바뀌었다. 그 결과 기계생산에 의한 양의 증대를 지향하고
품질향상과 결합되어 독일 공업디자인의 발전을 보게 된다.

독일 공작연맹
엘리시스키 구성주의 작품

르만이 설계한 ‘헤르 폰 제펠트 주택’은 당시 영국 자유건축의 교훈을 도입한 전원주
택(Landhaus)의 효시로서 단순하고 기능적이며 자유로운 형식을 추구하였다.
독일공작연맹의 영향은 디자인에 관련된 많은 흐름을 통합하였고, 20세기 초 독일의
산업, 경제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기능적, 구조적, 기하학적인 디자인을 성
취함으로 미술과 산업을 결합하는 독일 디자인을 실천하여 미술가의 역할을 재정립하
였다. 또한 학교 교육에 있어 예술과 공예와 공업의 통일을 실현하여 바우하우스에 영
향을 주었으며, 산업, 예술이 새로운 차원에서 대중의 생활에 공헌하는 현대적 형태의
디자인을 성취하였다.


마. 미래파(Italian Futurism)
미래파는 1909년 이탈리아의 시인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에 의해서 제창된 예술운동이다. 그가 1909년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에 미
래주의 선언문을 발표한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말인 1944년까지 과거의 전통
을 부정하고 근대 문명이 낳은 속도와 기계를 찬미하였으며, 단명하기는 했으나 파스테
르나크나 마야코프스키 등이 이의 대표자이다. 미래파 행위는 예술의 전분야에 걸쳐 행해졌다.
이 운동은 관습적이고 전통적인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재료의 사용과 장식을 배제한
다이나믹한 형태의 기계의 이미지를 강조하였다.
‘미래파의 기초와 선언문’에 따르면, 미래파의 목적은 과거를 폐기하고, 근대화를 추종
하며, 기계에 의한 미래사회의 건설을 주장하였다.
미래파는 문학운동으로 출발했지만, 미술, 광고, 패션, 음악 및 연극 부문까지 포용하
면서 이탈리아를 넘어서 영국과 러시아의 시인 마야코프스키까지 전 유럽에 영향을 끼쳤다. 미래파 추종자들은 과거의 단절로 산업, 기계와 도시의 속도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공간의 연속성

바. 미국의 시카고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약한 미국 근대 건축의 선구적 건
축가들로 이들의 상업적인 고층건물들은 근대도시의 변모를 일신시켰다. 시카고파 건
축가들은 순수예술의 형식주의나 재래적 양식주의적인 건축에서 탈피하여 합리적 이
고 기능주의적인 미학에 의거하여 철골구조를 채택하고, 개구부를 폭넓은 유리창으로
대체하는 등 단순한 벽면의 처리와 구성을 지향했다. 이파의 창시자인 구조기술자 제
니(Genny)는 1868년에 출간한 '건축의 이론과 실제'에서 철골조 고층빌딩의 가능성
을 설명하였다. 그의 시카고 홈인슈어런스 빌딩과 라이터 빌딩, 버넘 사무실이 설계한
리라이언스 빌딩 등이 대표적이나 이파의 가장 유명한 건축가는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이다. 그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하는 기능주의적 사상에 의거 새로운 구
조기술에 호응하는 새로운 표현 형태를 추구했다. 1890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시의 웨인
라이트 빌딩은 현대건축을 탄생시킨 최초 모델로 평가하고 있다.

루이스 설리번 웨인라이트 빌딩
라이트 낙수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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