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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개론

패션디자이너, 디자인학과 등 필수 디자인개론 요점 정리 7. 근대디자인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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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근대디자인의 출현

 

가. 산업혁명과 디자인
산업혁명은 1770년경에 시작되었으며, 변화의 핵심은 대량생산의 가능성을 열어준 공
장 제조시스템이었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가능하게 한
기계생산 방식이 발전한 결과 미란 이제 유용성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상, 이른
바 형태가 기능을 표현하며 이러한 형태도 미적이라는 기능주의적 사고를 갖게 되었다.
공업 활동으로부터 생산되는 모든 물건의 미학적 가치는 무엇보다도 먼저 합리적인 가
치이어야 하며, 장식에 치중해 오던 유럽의 디자인 개념은 유용한 목적에 봉사하는 개
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대량생산 기술과 제품의 기능에 의
해서 결정되는 기하학적이고 검소하며, 장식이 배제된 순수한, 합리적 형태로서 제품의
질적 수준을 창조하려는 기능주의가 대두하게 되었다.
기계 생산으로 제품의 질은 떨어지고 중세기의 기술전통은 단절되었고, 제품의 외관은
전문성이 없는 제조 공업자들의 손에 맡겨졌다. 그 결과 당시에는 모든 공예품이 조악
하고 장식과다에 빠져있었다. 기계화라고 하는 당시의 시대적 변화는 필연적으로 기계
에 맞는 새로운 양식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실생활과 유리되어 있었던 기
존의 순수 미술과는 다른 디자인의 개념이 새롭게 싹트기 시작하였다.

나. 그래픽 디자인
근대 디자인의 특징은 인쇄술의 발달로 장식 포스터와 다양한 서체가 출현하였다.
인쇄술의 발명으로 책과 지식이 보편화되었고 이는 문화혁명을 가져와 중세에서 근대
로 넘어가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비어즐리(Beardsley)의 선묘(線描)와, 흑백의 강
렬한 대조로 표현되는 단순한 평면적 형태묘사와 알폰소 뮤샤(Alfons Mucha)의 포스
터 디자인에서 고전적이고 새로운 양식의 선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알퐁스 뮤샤의 회화
비어즐리의 비너스와 탄호이저를 위한 권두 그림

다. 조형미술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은 회화의 표현양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절대왕정의 이완 및 인
간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욕구가 분출하였고, 지금까지 경시되었던 감각현상들에서 인
간성의 진실을 찾으려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에 따라 이전의 고전주의적이고 형식적 양
식에서 벗어나 감정표현이 풍부한 낭만주의 회화양식이 유행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 화가는 밀레(Millet), 루소(Rousseau), 쿠르베(Courbet)가 대표적
이며, 마네(Manet), 드가(Degas), 로트렉(Lautrec)등이 유명하다.
사실주의를 더욱 발전시킨 화가들은 모네(Monet), 피사로(Pizarro), 르누와르
(Renoir), 세잔(Cezanne)등으로 인상주의 화풍을 이루었고, 고갱(Gauguin), 고흐
(Gogh)는 독자적인 화풍을 이어갔으며, 쇠라(Seurat)는 점묘화법을 통한 신인상주의
화풍을 이루었다.

 

쇠라 봄의 그랑드
세잔 오베르 쉬르 우아르 전경

라. 조각
서양의 조각예술은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인간의 신체미를 추구한 작품이 대부분이었
다. 19세기에 들어 조각계에는 뤼드나 바리, 카르포 등이 등장했으나, 조각은 여전히
회화에 종속되어 있어, 이 3인의 출현도 아카데믹한 경향에 저항하는 소수의 움직임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조각의 고정관념을 깨고 조각에 대한 인식을 회화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은 로댕(Rodin)으로 그리스의 이상형의 조각이 아닌 생명력이 넘치는 평범
한 청년 이미지를 표현하여 근대 조각의 정점을 이루었다.
가장 전형적인 작품이 1880-1900년 제작된 186인의 인체를 높이 6.5m의 문에 조각
한 ‘지옥의 문’이다. 1904년 ‘생각하는 사람’ 등을 비롯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미켈란젤로 이후의 최대의 거장으로 예리한 사실의 기법을 구사하여 인간의 모든 희로
애락의 감정 안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약동을 표현하려 하였다. 이로써 근대 조각에 새
로운 방향을 여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생각하는 사람 - 로댕

마. 장식미술과 공예
대량생산은 대량소비라는 수요가 있어야만 가능하고,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나
디자인이 개발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1800년대 중반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 무역이
형성되면서 대량생산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따라 산업혁명이라는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한 때였다.
독일 출신의 미하일 토네트(Michael Thonet)가 만든 한 의자는 시간을 초월해 새로운
시대를 예시했다. 바로 토네트 의자였다. 이 의자가 나올 때는 아직 철이나 플라스틱 같은 현대적인 재료가 본격화되기 전이었다.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대량으로 생산하기
에 적합한 소재의 개발이 우선되어야 한다. 철과 같은 금속이나 플라스틱처럼 성형하기
가 용이해서 대량생산이 가능한 재료가 없었다면 본격적인 산업사회가 출범하는 데에
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가구 디자인은 접착제나 공작기술의 발전에 의한 곡
목(bentwood) 기술이 발전하였으며, 합판과 같은 새로운 재료를 적용하였다.

공예분야의 티파니(Tiffany)는 전통적인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유려한 유리공
예 작품을 제작하였다. 1876년 최초의 장식용 유백광 유리창을 생산하였고 금속성 무
지개 빛의 퍼브릴(Favrile) 유리특허를 획득하였다.

티파니 유리공예
티파니 램프

바. 건축 디자인
근대 건축은 19세기 이전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비판하고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 이
후의 사회의 현실에 맞는 건축을 만들려는 근대 건축 운동이다. 매우 지배적인 운동이
나, 구체적인 범위나 정의는 다양하다.
산업혁명 이전의 교회나 귀족의 건축물에서 공업화 시대의 공장과 창고와 같은 산업관
련 시설 또는 직주분리와 같은 생활 형태에 대응한 주택의 건축이 이루어졌다.
공업의 발달은 건축재료에도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여 철, 유리, 콘트리트가 구조재, 또
는 건축의 표면을 이루면서 대대적으로 사용된다.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를 위해 완공된 수정궁(Crystal Palace)은 건물 전체가 철골
섀시와 판유리가 표준화된 유니트에 의한 설계와 신공법으로 완공된 건축물로 획기적
이고 기념비적인 조형건축으로 평가된다. 또한 프랑스 에펠(Eiffel)에 의해 신개념의
주철탑이 건설되었는데, 격자 구조로 이루어진 파리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1889
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세계 박람회의 출입 관문으로 건축되었다.

파리 에펠탑

사. 제품디자인
철 생산기술의 발전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동력원이었던 증기기간의 출현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어 1712년 토마스 뉴커먼(Tomas Newcomen)은 대기압 증기기관을 만들었
고, 제임스 와트(James Watt)는 이 뉴커먼의 기관을 개량해서 산업혁명에 중요한 역
할을 하게 되는 증기기관을 발명하였다. 이러한 기계화에 따른 제품의 출현은 대량생산
과 새로운 기계미학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트레비식 고압 증기기관

아. 사진
1827년 니엡스(Niepse)는 세계 최초로 금속판에다 동판을 포개는 방법으로 금속판에
사진을 찍는 데 성공하였으며, 1882년, 뉴욕 로체스터 은행 서기였던 조지 이스트먼
(George Eastman)이 현대식 필름의 초기 형태를 만들어 내고, 1883년에는 세계 최초
의 감광필름을 만들어내 이것을 양산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조지 이스트먼이 개발한 코닥카메라는 단순한 매카니즘 시스템으로 아마추어 사진가들
의 호평을 받았다. 또한 마이브리지(Muybridge)는 천재적인 사진가로서 중요한 사진
기술과 더불어 움직이는 사진, 즉 활동사진을 개발해 영화시대를 개척한다.
사진은 과학인 동시에 또한 예술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반된 복합성은 사진의 예술성을
논할 때 이제까지의 예술개념에 꼭 들어맞지 않는다. 본래 사진은 회화의 복제수단으로
인식하였다. 회화의 복제기술로는 일찍부터 판화가 있었는데 판화기술은 18세기에 이
르러 정점에 다달았다. 이는 근대 시민사회의 성립과 함께 등장한 부유층의 회화 소유
열에 호응하는 풍조의 발현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풍조 속에서 보다 더 정밀하고, 다량
의 복제가 가능하면서도 값이 저렴한 카메라가 등장했을 때 신흥세력인 부유층은 매우
환영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사진 니엡스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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