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8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소박하면서도 운치가 있어 보이는 군산 임피역 입니다.
일제가 1912년 만경평야에서 수탈한 쌀을 군산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철로를 놓았고 1920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이후 이용객 감소로 2008년 여객 취급이 중단된 뒤 폐역으로 남았었는데요, 1936년 건축된 건물의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어 철도와 건축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해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뒤 현재는 임피역사의 오래된 추억을 공유하는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시실리의 뜻은 시간이 멈춰버렸다는 뜻입니다. 이곳에 서면 잠시나마 시계가 거꾸로 돌아 임피역사가 출퇴근하는 시민과 통학하던 학생들로 북적이던 시절이 필름처럼 지나가는 듯합니다. 하지만 다른 폐역과는 달리 임피역 앞으로는 작년까지만 해도 기차가 멈추지는 않아도 지나는 다녔습니다.
임피역을 자주 왔지만, 겨울철에 온 것도 처음이고 설경도 처음인데요, 이 조형물의 풍경은 채만식의 단편소설 <논 이야기> 중 한 장면입니다. 임피역사와 당시 시대적 조형물이 함께 있어 시간이 거꾸로 가는 마을이 맞는 것 같네요.
임피역 광장에는 옥구농민 항일항쟁탑도 있습니다.
임피역이 있던 곳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옥구현이었으며 군산항이 개항하면서 1910년 군산부가 될 때까지 옥구부였는데요, 개항으로 인해 신문물이 급속도로 밀려들었고 일제의 수탈에 옥구 사람들은 옥구농민조합, 서수 농민조합, 서수 청년회 등을 조직해 맞섰습니다.
옥구농민 항일운동은 1927년 일본인 농장주가 수확한 곡물의 75%를 소작료로 내라고 하고, 일본 경찰이 농민회 간부 장태성을 체포 후 감금하자 이에 옥구 농민 500여 명이 주재소를 부수고 구출하며 만세를 부른 사건입니다.
전국 유일의 조직적인 농민 항일운동을 이렇게 기념비로나마 볼 수 있어 임피역을 찾은 의미가 남다릅니다.
임피역사에는 건축 당시부터 있었던 오래된 유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우물은 물론 매일 정오가 되면 사이렌을 울린 오포대도 있는데요, 이러한 유물들을 보니 시계가 귀했던 시절 촌로들은 사이렌 소리를 듣고 일하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등의 당시 풍경이 보이는 듯합니다.
임피역사는 등록문화재입니다.
역사부터 화장실까지 모두 등록문화재인데요, 폐역된 뒤로는 화장실로 사용하지 않고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옛 기억을 되살려 주는 소중한 건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의 공중화장실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70~80년대만 해도 공중화장실은 임피역사 공중화장실처럼 생겼기 때문입니다.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풍경에서 잠깐 벗어난 곳은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열차입니다.
열차 두 칸을 이어 임피역과 군산선에 대한 기차 안 풍경을 전시하고 있는데요,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아쉽게도 전시관은 휴관 중이어서 내부를 살펴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 중 하나인 임피역사를 둘러보겠습니다.
건물 앞으로 아름드리나무 두 그루 자리하고 있는데요, 설경과 함께 임피역사를 더욱 더 우아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임피역사 앞에는 채만식의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의 한 장면이 조형물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설명서에 의하면, P가 대졸 실업자로 이혼 뒤 형에게 아들을 맡기고 서울에서 구직활동을 하지만, 모두 거절당해 절망하며 책을 전당포에 잡힌 돈으로 친구들과 선술집에서 술로 울분을 토하는데요, 아들이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돼 형 손에 이끌려온 아들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임피역사도 열차 전시관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휴관 중입니다.
내부에는 당시 승차권을 개찰하는 역무원과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표를 발행하는 역무원 등 많은 조형물이 있지만, 창밖으로 아스라이 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임피역이 있는 곳은 임피면 술산리입니다.
역이 있다 보니 전라도의 다른 군 단위 면 소재지 만큼 큰 마을이었습니다. 임피역은 일제강점기부터 70~80년대까지만 해도 군산이나 이리의 중고등학교로 등하교 하던 학생들이 넘쳐나던 곳이었기에 생동감이 살아있었을테지만, 지금은 을씨년스럽기만 합니다.
익산역에서 출발해 대야역을 거쳐 군산과 서천으로 향하는 장항선 선형개량공사로 지금은 임피역 앞으로 기차가 지나다니지 않습니다.
임피역 다음 역인 대야역도 지난해 12월 10일 현대식 역사를 신축해 옛 적벽돌 대야역은 페역이 되었는데요, 하루 9차례 지나다니던 무궁화호 열차는 이제 임피역에서 몇백 미터 떨어진 새로운 복선 전철 구간을 달립니다.
멀리 익산역에서 대아역을 지나 군산역까지 새롭게 건설된 20여 km의 신장항선 철도 교량이 보입니다.
임피역에서 이제나저제나 기차 오기만 기다리다 건너편 철길로 기차가 가는 걸 보고 오래전 철도를 놓고 있다는 것을 깜박했는데요, 덕분에 달리는 기차를 배경으로 임피역사를 찍는 낭만 가득한 사진은 이제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꾸 대야역 방향을 바라보게 되는데요, 기차가 오면 소리가 철길로 전달되기에 가만히 철길에 앉아 기차 오는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대 보기도 했습니다.
김중수 시인의 시 임피역을 보면서 이제는 임피역으로 오지 않을 무궁화호 열차를 마음속에 그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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