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조선의 문화 4
■ 조선 복식
1. 일반적 특징
• 태종부터 연산군 시대까지 견직물과 면직물이 모두 성장·발전하는 시기였음
• 왕들은 양잠을 적극 권장했고, 관청 중심으로 사, 라, 능, 단 과 같은 고급견직물
생산에 노력을 기울임
• 연산군은 통직을 설치하고 옷감생산에 실명제를 도입하여 고급 견직물을
생산하였음
• 장인의 기술 혁신 위해 견습장인을 중국으로 연수를 보냈음
• 세종의 면업장려정책은 생산량과 품질이 크게 향상되었음
• 면포는 상류층에서 인기가 많았고, 명나라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온 중국 사신과
수양대군에게 면포로 만든 단령, 답호, 철릭을 하사하였음
• 중종부터 임진왜란때 까지 옷감생산이 수공업에서 민간수공업으로 확산되는 시기였음
• 정부에서 <농상교서>를 반포하여 농민 계몽하고 잠업진흥정책을 시행하였음
• 잠업을 부업으로 하는 것이 모든 농가로 확산되고 민간에 의한 양잠이 성행하였음
• 면직물은 여진, 명, 일본 등과 대외교역에서 말, 향료, 비단, 염료 같은 수입품에 대한 지불수단이었음
• 임진왜란 이후부터 영조 때까지 직물산업은 침체기였음
•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고, 사치스러운 견직물보다
생산이 쉬운 면포 생산을 적극 권장하였음
• 영조는 “전국에 있는 사직기를 즉시 철거하라”는 강력한 금지령을 내렸음
• 정조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단순한 명주나 무명, 베, 모시와 같은 옷감이 지방의
특산품으로 정착되던 시기였음
• 직물을 생산하는 일은 중앙정부에 세금으로 직물을 납부하는 목적을 떠나 농가에
이익을 주는 부업으로 발전하였음
•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조선에서 신분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의복이었음
• 왕의 경우 곤룡포와 어의를 입었고 왕만 입을 수 있었음
• 가슴과 등에 둥근모양의 판을 붙여 장식했으며 이것을 ‘보’라 했음
• 왕의 보에는 수놓은 용 발톱 5개, 왕자의 보에는 용 발톱 4개, 왕손은 3개였음
• 남자양반과 문무관에 따른 차이, 여자양반, 중인, 백성들의 대부분이었던 상민,
천민까지 신분에 따른 복식이 모두 달랐음
2. 의복의 종류별 특징
• 남성 의복 -포 : 답호, 액주름포, 철릭, 직령, 도포, 심의, 소창의, 대창의, 학창의,
중치막, 주의 등이 있음
1) 답호
• 답호는 소매 없는 남자 의복으로 조선 초기 반비, 전복과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함
• 조선시대 답호는 왕과 귀족계층이 즐겨 입었고, 중기 이후 일반 선비들에게 확대,
말기에는 조신들이 두루마기 위에 입어 예복으로 삼기도 하였음
• 조선시대 포 중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음
• 중기에는 소매가 없어지고 후기에는 깃과 소매가 없어져 ‘전복’이라고 하였고
검푸른 초록, 다갈색 등이 있었음
2) 액주름포
• 양쪽 겨드랑이 밑에 주름이 잡혀 있는 곳은 깃의 직령교임식 포를 말함
• 액(겨드랑이), 주름을 합한 말로 양겨드랑이 밑에 주름 잡혀 있는 옷이라는 의미임
• 형태는 액주름포의 길과 섶이 의와 상으로 분리되지 않고, 옆에 달린 무만 따로
주름잡아 겨드랑이 밑에 연결하였음
• 소매 형태나 트임 유무와 길이, 고름 색상과 크기도 다채롭게 나타남
• 솜을 두거나 누비로 구성한 사례가 많고 계절에 따라 홑, 겹, 솜, 누비의 구성 방법을
달리하여 평상복임을 알 수 있음
3) 철릭
• 문헌에서 첩리, 천익, 첩리, 천익 등으로 나타남
• 한글로는 철릭, 털릭, 쳠니, 쳔닉 등으로 표기하는데 허리에 주름 잡아
상의하상식으로 연결한 직령교임식
• 다른 유물에 비해 조선 전기의 것이 많이 출토됨
• 기본형에는 변함이 없었고, 시대에 따라 상하 길이나 깃, 소매, 옷고름, 주름 등이
변함
• 소매는 통으로 된 것과 한쪽 또는 양쪽 소매에 단추로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었음
• 주로 넓게 짠 끈인 광다회를 두르고 계급에 따라 색을 달리하여 신분을 구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음
• 품계가 높을 수록 홍색을 사용하고 낮은 직급에서는 청색을 사용하였다고 하였음
4) 직령
• 깃이 곧은 옷을 말함
• ‘직령포’, ‘직령의’라고도 하며, 단령의 받침옷을 겸하기도 하였음
• 많은 계층에서 입었으나 후에 하급 관리의 제복이나 악공 상복으로 이용함
• 형태는 깃의 모양을 제외하고는 단령과 같았음
• 초기에는 좁은 소매에 네모 깃이고 좁은 사각형의 무가 달려 있었음
• 중기에는 넓은 소매에 칼깃이며 넓은 무는 위쪽을 뾰족하게 접어서 뒤로 젖혀
입었음
• 후기에는 소매가 도포와 같이 두리 소매가 되었으며 깃 궁둥이가 완만하고 무는
완전히 뒤로 젖혀 길에 무의 위쪽을 실로 동여서 고정시켰음
5) 도포
• 16세기 말에 쓰인 <학봉집>을 통해 평상복으로 도포 착용 알수 있음
• 이석명(1513-1583) 묘의 검푸른 색 명주 겹도포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고됨
• 17세기 도포 착용이 보편화되었고, 도복이라고도 하며 종교적인 데 근원을 두고
있음
• 길복으로는 청색, 평상시에는 백색을 입었음
• 1884년 갑신 의제 개혁 때 소매 넓은 옷들과 함께 폐지 되었으나 현재 제사지낼 때
제복으로 입기도 함
• 허리에는 가늘게 짠 끈 세조대를 하고 당상관은 적색·자색, 당하관은 청색 또는
녹색, 서민은 흑색, 상제는 백색을 띠었음
• 홑도포가 일반적이나 겹도포도 흔히 사용되었음
6) 심의
• 의와 상이 연결되어 있는 상하연속의임
• 홑겹으로 된 포로 흰색이며 깃 모양은 네모난 것, 둥근 것, 맞여민 것 등이 있음
• 소매는 둥글고 깃, 소맷부리, 옷단 가장자리에 검은 선이 둘러져 있음
• 심의 각부분에는 철학적 의미 내포되어 있는데 의와 상 따로 마름질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고, 상을 열두 폭으로 마름질 하는 것은 일년 12개월 사계절을
상징하며 선을 두른 것은 부모에 대한 효도와 공경을 뜻함
7) 소창의
• 깃이 직령이며 무업이 옆이 트여 있어 세 폭으로 갈라져 있음
• 신분이 낮은 계층이 주로 착용하고 사대부들은 다른 포를 입을 때 받침옷으로 입음
8) 대창의
• 소매가 넓고 옆에 무가 있으며 뒤가 트인 포임
• 앞에서 보면 도포와 같아 도포 대용으로 착용하기도 하고 세조대를 매었음
9) 학창의
• 대창의에 검은 천으로 가장자리에 선을 두른 것으로 심의와 비슷함
• 세조대나 광대로 묶어 여미고 복건을 쓰거나 정자관, 동파관 등을 착용함
• 신선이 입는 옷이라하여 사대부의 연거복으로 쓰고 덕망 높은 도사나 학자가
입었음
10) 중치막
• 1550년 사대부 일기, 1590년 쇄미록에서 중치막이 확인되며 중치막언문 표기에
듕치막이 확인되기도 함
• 깃은 직령이며 무가 없고 양겨드랑이 밑으로 트여 있으며 세자락으로 되어 있는
옷으로 세조대를 매었음
• 사대부가에서는 관복을 입을 때 안에 받쳐 입었고, 일반인들은 외출복으로
사용하였음
11) 주의
• 소매가 좁고 옆에 트임 없이 두루 막힌 옷으로 두루마기라고 함
• 터진 곳 없이 골고루 막혔다는 뜻에서 왔음
• 1830년 두루마기 소매 넓혀 외출복으로 착용함
• 조선 말기 의복의 간소화에 따라 도포, 직령, 창의 등의 넓은 소매를 없앴고
소창의에 무를 달고 양쪽 겨드랑이 밑 부분이 터진 곳을 막으면 주의가 되었음
• 문무백관들은 보통 예복으로 선비나 사인들은 사복으로 착용하면서 일반인들에게
널리 확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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