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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문화사

쉽게 쓴 미용학과, 미용사 실기 및 교양 미용문화사 정리 7. 중세 로마네스크의 미용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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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중세 로마네스크의 미용문화

■ 중세 로마네스크 문화


로마네스크 양식 : ‘로마와 같은, 로마스럽게’ 라는 의미로 로마 양식을 비슷하게 답습
- 중세 중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약 1050~1300년도의 시기
- 서유럽의 중세는 게르만의 대이동과 서로마 제국의 와해로부터 시작

 

1) 역사적 배경


동유럽에서 비잔틴 문화가 융성하는 동안 서유럽에서는 강력했던 프랑크 왕국의
분열로, 즉 오늘날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로 분리됨
오랜 기간의 혼란기인 암흑기(5~9세기)를 거쳐 11세기 경에 비로소 통일과 안정을
되찾게 되어 근세 유럽의 기초를 형성함
10세기 이후 안정된 유럽 문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로마의 교황청을
중심으로 서유럽의 기독교는 동방의 비잔틴과 분리되어 독립적인 시스템을 형성함
비잔틴 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유럽의 기독교는 중세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절대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함(종교적 가치에 최대 관심)

최후의 심판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난 1000년을 기준으로 사람들의 사고는
엄청난 변화를 갖게 됨
기독교가 여전히 삶의 중심에 있었으나 서서히 세속적인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겪음
10세기 후반에 걸쳐 11세기부터 철제 쟁기의 사용과 개간 등으로 농업 생산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그로 인해 잉여 농산물의 교환이나 수요가 필요해짐에
따라 상인들이 등장함
상인들의 등장으로 ‘길드’라는 상인들의 보호 연합이 형성되었고, 상인들의 장사
거점이 되는 곳에 도시를 만들기 시작하여 도시가 점차적으로 발전함
카롤링 왕조가 바이킹, 사라센의 공격에 의해 붕괴되자 군사력에 의한 통제의
필요에서 출발한 사회통제 시스템으로 봉건제가 대두됨

봉건제 장원제
군주와 봉신(封臣) 사이에 성립된 주종 관계
강성한 경제
봉신에게 충성을 맹세 받고 영토를 분배하여
지엽적 통치 방식을 통해 지배력을 구축
하나의 마을에서 펼쳐지던 일종의 생활 방식
신앙생활을 하는 마을 중심에 위치한 교회, 공동
제분소, 양조장, 농지와 목초지, 공동 숲 등으로
구성
확고한 신분제
사회 구성원 : 영주, 기사, 농노

 

장원제의 신분체계
- 영주 : 영토 내에서 최고 권력자
- 기사 : 군사적 통치자
- 농노 : 노역과 충성을 제공하는 자

 

2) 문화의 융합 현상


중세의 서유럽은 이슬람과 비잔티움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그리스, 로마,
기독교, 게르만 전통이 독특하게 융합된 문화를 발전시켜 서유럽의 중세 문화를 형성하게 됨
남부의 그리스 · 로마 문화 : 세련되고 균형 잡힌 지적인 문화
북부의 게르만 문화 : 원시적이고 거칠며 역동적인 문화
십자군 전쟁 : 동방의 이슬람 세력의 확장에 따라 기사도 정신이 부활함으로써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까지 전쟁이 계속되었으며, 이는 중세 전기의 사회,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침

 

3) 사회문화적 배경과 특징


10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유럽에서 유행한 건축 · 조각 · 미술 양식
‘로마네스크’란 용어는 19세기 초 고고학자인 샤를 드 제르빌(C ha rles de
G erville)이 중세 유럽의 건축 양식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로 둥근 아치가
주 모티브인 로마의 건축 양식에서 파생되었음을 나타냄
십자군이나 성지순례를 통한 교류 과정에서 비잔틴 · 이슬람 · 켈트 · 게르만 등
여러 지방의 양식에서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고, 수도회를 통해 다시 여러 곳으로 전파됨

두꺼운 벽, 둥근 아치, 단단한 창간 벽, 커다란 탑 등 육중하고 어두운 편
조각, 벽화, 공예품 등에 지배적인 예술 양식으로 전개되어 나아감
‘로마네스크’라는 용어를 사용한 배경에는 고대 로마 양식이 로마네스크로
연결되어 계승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이탈리아의 피사 대성당, 영국의 런던 탑 등이 대표적 건축물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

 

피사 대성당

 

■ 중세 로마네스크 복식


게르만 요소를 바탕으로 그리스 · 로마의 전통을 계승한 비잔틴 문화와 동방 문물이
융합되어 독특한 스타일을 형성
남쪽 그리스 · 로마의 부드러운 드레이퍼리형의 복식에 북쪽 게르만족의 신체
밀착형 바지, 털 장식, 레이어링 착장 기법이 결합
교역을 통한 비잔틴, 동방의 영향과 게르만족이 살던 북유럽 추운 곳의 특성이
접목되어 복식의 활동성 · 기능성이 우선시 됨

전체적으로 헐렁한 형태에서 몸에 맞는 형태로 발전해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
도시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직업이 등장하였으며, 상업 활동을 위해 이동과 활동이
편하고 몸에 맞는 복식이 주를 이루었음
남자의 활동 영역이 다양해짐에 따라 의복의 남녀 구분이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여자 복식이 남자 복식보다 더욱 화려하고 복잡해짐
동방으로부터 견직물과 면직물이 직조 기술과 함께 수입되었고, 염료를 수입하여
모직물 공업이 발달하는 등 직물 공업의 기반을 이룸

비잔틴으로부터 새로운 직물과 기술이 전래되어 복식도 복잡하고 색채도 풍부해짐
→다양한 색의 등장, 블리오 같은 체형을 드러내는 실루엣도 선호됨
기독교의 영향으로 신체 노출이 제한되고 몸 전체를 감싸 외관에 중점을 둠
(신체 라인의 은폐)
한편, 자본주의로 인한 잉여가치의 개념 형성 →세속적인 패션 탄생
인체의 자연스러운 라인을 따르는 새로운 인체미에 대한 인식 도래 →제작 기술의
발달로 몸의 실루엣을 그대로 드러내려는 방향으로 나아감

수 세기 동안 여성들이 갈망하게 되는 ‘가느다란 허리’의 개념, 복식에서의
에로티시즘의 개념, 그리고 코르셋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됨
가는 허리를 표현하기 위해 대조적으로 신체의 다른 부분들, 즉 가슴, 힙 등을
강조하였고 풍성한 소매와 스커트, 긴 트레인이 등장함
십자군 전쟁 등 군복과 관련된 복식을 통해 몸에 맞추는 입체 재단과 단추의 도입이 시작됨
많은 영주들을 구분하기 위한 문양이 발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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