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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여주에서 가볼만한 역사 유적지! 명성왕후의 창건 사찰 대법사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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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흥민씨의 전설 마암

명성황후의 발자취를 찾아가는길은 남한강변 마암에서 시작됩니다

신륵사와 마주한 남한강변 여주의 대표적 성씨인 여흥 민씨의 시조 탄생 설화가 전해지는 바위입니다. 이곳 바위의 구멍에서 시조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신라시대 경덕왕 때 마암 바위 아래 강물에서 황룡마와 여룡마(검은용마)가 나타나 고을 이름을 황려현으로 고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절벽 바위에는 한자로 마암 이란 새겨져있으나 오랜 세월에 마모되어 현재는 아주 흐릿하네요

 

 

◆ 명성황후 생가 기념관

두번째로 찾아가야할 인현왕후와 명성왕후의 삶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명성황후 생가 기념관입니다. 경기도 여주에서는 조선시대 총 7분의 왕비가 배출되었는데 그중 여흥 민씨 가문이 총 3분이나 됩니다. 원경왕후, 인현왕후, 명성황후로 조선 건국에서 멸망까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명성황후가 8살때까지 살았다는 생가가 복원되었고 숙종이 인현왕후의 친정을 위해 지어주었다는 감고당이 서울 안국동에서 이전 복원되었으며 역사를 만나는 기념관과 민가 마을까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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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명성황후 창건사찰 대법사

세번째로 찾아가는 곳은 대포산 대법사입니다. 영동고속도로 여주 jc 동쪽에 위치한 작은 산으로 동쪽으로 명성황후 탄생설화가 전해지는 대법사가 있습니다. 통일신라 때 창건된 원당사가 시초로 조선 말기에 폐사되었다가는 1971년 다시 창건되어 지금에 이르는 사찰입니다.

그 사이에도 창건된 폐사가 반복되었던 듯 한데요, 인근에 있던 인현왕후의 오빠 민진후의 묘를 관리했던 명성왕후의 아버지 민치록의 명복을 빌었고 딸이 중전으로 책봉되자 대웅전을 건립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대법사를 찾아가는길에는 구 명성황후 창건사찰이라는 문구가 이어지고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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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과 한파로 인해 찾는이가 거의없는 사찰은 무척이나 조용합니다.

올겨울 잦은 눈이 그대로 내려앉은 풍경은 더욱 고요하게 느껴집니다.

 

 

​사찰은 일주문을 지나며 하늘, 땅, 물, 땅속 중생을 구원하는 법고 운판, 목어 범종 사물의 전각을 시작으로 대웅전과 지장전, 삼성각, 요사채로 이어집니다. 창건과 폐사가 반복되는 짧은 역사에 비해 규모가 제대로 갖춰졌습니다. 대웅전 법당을 잠시 둘러, 전각 곳곳을 돌아보는 동안 찾는이는 없고 요사채에서 살짝이 인기척만이 전해집니다.​

 

 

​대포산 대법사의 3개의 불상

대법사에서는 총 3기의 불상을 만나게됩니다.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이 첫번째요, 사찰 옆마당에 모셔진 약사여래좌상, 마지막으로 요사채 옆쪽에 모셔진 작은 미륵불입니다. 특별한 설명이 없이 정성스레 모셔져있는데 어디 물어볼 사람도 보이지 않아서는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이 현몽 후 발견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미륵불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을 해 봅니다.

 

 

​자그마한 건물을 조성하여 안치한 길쭉한 형태의 오래된 미륵불의 모습입니다

 

 

​대포산 자락의 사찰 대법사는 행사채 건너편 산기슭으로 포대화상으로 시작으로 또다른 미륵불과 석탑도 조성되었습니다. 모두 조성된지 얼마되지 않은듯 보여지며 가파른 언덕을 따라 조성되어서는 사찰의 기상이 더해지네요​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미륵불입니다. 그 앞으로는 석등도 조성되어서는 어둠을 밝힙니다.

그리고 한번 더 언덕을 오르면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있다는 7층 석탑이 있습니다. 뛰어난 조형미가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 여흥 민씨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민정중 선생묘

대법사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 길 가옆으로 문충궁 민정중의 묘역이 있습니다.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원경왕후, 인현왕후, 명성왕후등 조선시대 3분의 왕비를 배출한 가문의 발자취를 잠시 더듬어보게됩니다. 민정중은 숙종 대의 문신으로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민광훈의 아들이며 인현왕후의 백부입니다.

인조 27년에 장원급제하여 이후 좌의정까지 올랐으며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사이에두고 남인과 서인의 당파싸움의 절정이었던 기사환국 때 평안북도 벽동으로 위배되었다가 세상을 떠나게됩니다.

 

 

대로변에서 마을길로 접어든지 얼마되지 않아 길가 왼쪽으로 대형 신도비가 서있고 그 위쪽으로 묘역이 형성되었습니다. 묘역은 원형이 잘 보전되었고 헌유석, 상석, 고석,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등 옛 석물도 갖춰져 있습니다.

민정중과 두 부인이 합장되었음을 알리네요

 

 

​문인석은 금관조복을 착용하고 있으며 신체 비례가 균형을 이른 문관의 형상이며 봉분 둘레에 설치된 팔각형의 둘레돌 또한 잘 보존되었습니다. 산속이 아닌 벌판 언덕위에 자리잡은 모습이 무척이나 특이하였습니다. 대법사를 중심으로 함께했던 문화재탐방은 약 반나절만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명성황후를 조금 특별하게 만나고 싶은분들이라면 여흥 민씨의 시조가 서린 마암을 시작으로 명성왕후생가 대법사를 지나 민정중 선생묘역까지 함께해보아도 괜찮겠습니다

 

 

명성황후생가유적지

관람시간 10:00 ~ 17:00 ( 2월까지)

관람료 : 무료

주차비 : 대형 2,000원 / 중형 1,000원 / 경차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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