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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문화사

쉽게 쓴 미용학과, 미용사 실기 및 교양 미용문화사 정리 53. 고조선·고구려의 문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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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고조선·고구려의 문화 3

쌍영총 부부 초상화

■ 고조선·고구려 복식


1. 고조선의 복식사 배경
증보문헌비고, 연려실기술 등에 “머리에 개수하는 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음
- 의복 정제를 말하는 것으로 고유 복식이 이때 부터 형성된 것으로 추측
- 사기, 조선열전 등에 “연나라 장수 위만이 조선 입국할 때 추결만이복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음
1) 추결 : 고대 머리장식인 상투를 의미함
2) 만이복 : 중국복식과 다른 호복을 착용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임, 고조선의 복식은
한족과 달리 스키타이계 호복임을 알 수 있는 것

부여의 시조 해모수를 묘사한 기록 “머리에는 조우관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의
칼을 찼다”
- 조우관에 관한 우리나라의 최초 기록임(두 손을 합장한 것과 같은 모양인 변형모에
새의 깃을 꽃은 것)
- 유목민족의 조류 숭배 사상인 샤먼적 의의를 추측
해모수는 최초의 조우관 착용자로 기록되어 있음(제정일치의 인물로 추정 가능)

삼국지, 위서동이전 등에 “부여인들은 백의를 숭상하며 백포로 만든 소매가 큰
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었다”는 기록이 있음
- 부여는 추운 지역으로 귀족들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덧입었고, 상을 당하면
남녀 모두 순백색의 옷을 입고 부인들은 포로 된 얼굴을 덮는 천을 착용하고
장신구는 하지 않았음

 

옥저와 동예의 경우 후에 고구려에 복속됨
- 옥저는 복식이 고구려와 동일
- 동예는 남녀 모두 둥근 긴 옷을 입었고, 남자는 은화장식, 여자는 바지를 입지 않고
비단에 솜을 넣어 누빈 형태의 옷을 착용함

 

삼한 가운데 마한의 관리자층은 관모를 착용함
- 의복은 직물로 만든 포를 입고 짚신류나 가죽신을 신었음
- “마한 사람은 영주로 의복에 부착시켜 장식했다”는 기록을 통해 구슬로 의복을
장식했음을 추측할 수 있음
- 북방 유목, 기마 민족이 의복에 영주나 금, 은 등으로 장식했고, 이는 고분 출토품을 통해 확인

 

2. 고구려의 복식사 배경
고구려 깃발은 종류가 많지 않았고, 단순하며 무늬가 많이 없었음
지배층의 복식은 한나라와 흉노에서 수입한 비단과 금, 은으로 장식하여 입음
결혼과 동시에 수의 제작 – 고구려 무덤은 부부 합장 묘 또는 무덤 벽화에 부부
초상화 그려져 있음
하늘의 별, 동물 등에서 따온 패턴 무늬 한복과 흰옷 입음

쌍영총 부부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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