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전근대사
01. 선사시대
1. 구석기·중석기·신석기 시대
시기 | 구석기 시대 | 중석기 시대 | 신석기 시대 |
연대 | 70만년 전 | B.C.1만년~B.C.8000 | B.C.8000~ |
특징 | 사람 살기 시작 | 기후 온난화 (빠르고 작은 동물) |
민족 기틀 형성(정착, 농경) |
도구·유물 | • 뗀석기(주먹도끼, 긁개, 슴베찌르개) • 골각기(뼈도구) |
• 잔석기(창·활·작살) • 이음 도구 |
• 간석기 • 토기: 이른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눌러찍기문 토기, 빗살무늬 토기 • 원시수공업: 가락바퀴, 뼈바늘 |
경제 | 사냥, 채집, 어로 | • 사냥, 어로, 채집 • 농경시작(조,피,수수) -탄화된 좁쌀(봉산 지탑리,평양 남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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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 무리사회, 이동사회 • 평등사회 |
• 씨족사회, 부족사회 • 평등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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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 동굴, 바위그늘, 막집 | 움집(중앙 화덕, 타원형, 반지하) | |
예술·신앙 | 고래, 물고기 조각 (주술적의미) |
• 원시신앙 -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 • 치레걸이,조개껍데기 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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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 공주 석장리, 연천 전곡리, 제천 점말동굴, 단양 상시 바위그늘, 청원 두루봉 동굴 |
통영 상노대도 조개더미 최하층, 거창 임불리, 홍천 하화계리, 웅기 부포리, 평양 만달리 |
제주 한경 고산리, 서울 암사동, 부산 동삼동 패총, 양양 오산리 |
2. 청동기·철기 시대
시기 | 청동기 시대 | 철기 시대 |
연대 | B.C.2000~B.C.1500 | B.C.500~ |
특징 | 사유재산, 계급발생, 선민사상 대두, 국가형성 |
초기 국가 형성 |
도구·유물 | • 간석기-반달돌칼, 홈자귀 • 토기 - 덧띠 새김문토기, 민무늬토기, 미송리식토기, 붉은간토기 • 청동기- 비파형동검, 거친무늬거울 |
• 토기: 민무늬토기, 덧띠토기, 검은간토기 • 독자적 청동기 발전 - 세형동검, 잔무늬거울, 거푸집 • 철기-철제농기구, 철제무기 • 붓(창원 다호리유적)-한자전래 • 명도전, 반량전, 오수전-중국과 교류 |
경제 | 벼농사 시작 -탄화미: 부여송국리, 여주흔암리 |
벼농사 발달 |
사회 | 계급발생, 군장사회, 국가형성(고조선) | 정복활동 활발-초기 국가 형성(부, 고, 옥, 동, 삼) |
주거 | • 배산임수(구릉, 야산), • 움집(장방형, 지상가옥화) • 방어시설-목책, 환호 |
지상식 가옥 귀틀집, 초가집, 반움집 |
예술·신앙 | 암각화(울주 반구대, 고령 양전동 알터) | |
무덤 |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 널무덤, 독무덤 |
3. 고조선의 발전
건국 | B.C. 2333년(청동기 시대, 군장 국가) → 철기 시대(연맹왕국) 단계에서 멸망( B.C. 108) |
영역 | 요령지방~한반도 북부(중심지 이동 : 초기 요령 → 후기 대동강 유역) |
세력범위 |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 거친무늬 거울, 탁자식 고인돌 |
기록 | • 건국설화: 삼국유사(최초), 제왕운기, 세종실록지리지, 응제시주, 동국여지승람 등 • 중국: 관자(최초), 상서대전, 사기, 산해경, 위략 등 |
사회 | 8조 법금(한서 지리지) - 살인자는 사형 → 생명 존중 - 상해 시 곡물 배상 → 농경사회, 사유재산, 노동력 중시 - 절도 시 노비, 50만 벌금 → 계급사회, 일부 화폐 사용 - 기타: 여자 정절 중시 → 가부장적 사회 |
발전 | B.C. 4C 연과 대립 B.C. 300 전후 연 진개의 침입 → 중심지 이동 (요령→대동강유역) B.C. 3C 부왕, 준왕, 왕위세습 B.C. 194 위만조선 성립 - 본격적 철기 수용 - 활발한 정복 활동(진번, 임둔) - 진·한 사이 중계무역 → 한과 갈등(창해군 설치, 섭하살해) - 중앙정치조직 정비: 경, 대신, 비왕 등 관직 B.C. 108 • 한무제 침입: 1년 항거, 왕검성 함락 → 고조선 멸망, 한군현 설치 • 법조항 60여조 증가 |
4. 초기 국가
부여 | 고구려 | |
위치 | 송화강 유역 평야지대 | 동가강 유역 산악지대(졸본) |
정치 | • 연맹왕국(5부족 연맹체) • 군장: 마가·우가·구가·저가 ⇒ 대사자, 사자 • 1세기경 왕호 사용, 3세기 선비족 침입으로 쇠퇴 • 고구려에 복속(문자왕, 5C말) |
• 연맹왕국(5부족 연맹체) • 군장: 대가(상가, 고추가, 대로, 패자) ⇒ 사자, 조의, 선인 |
경제 | 반농반목, 특산물-말, 주옥, 모피 | 약탈 경제(부경) |
풍속·법률 | • 4조목: 살인자 사형, 간음한 자 사형, 1책12법, 질투 심한 부인 사형 • 형사취수제, 사출도, 우제점복, 순장 |
• 서옥제(데릴사위제) • 1책12법 • 형사취수제 • 점복 |
제천행사 | 영고(12월): 수렵사회 전통 | 동맹(10월) |
옥저 | 동예 | 삼한 | |
위치 | 함경도 | 강원도 | 한강 이남 |
정치 | 군장국가(군장-읍군, 삼로) | • 연맹왕국(진왕, 마한왕) • 군장-신지,견지,부례,읍차 • 제정분리 사회(천군-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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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해산물 풍부 | • 방직기술 발달 • 특산물: 단궁, 과하마, 반어피 |
• 벼농사 발달(저수지축조) • 철 수출: 변한 |
풍속·법률 | • 골장제(가족공동묘) • 민며느리제(매매혼) |
• 족외혼 • 책화(타부족 영역 침범×) • 여(呂)·철(凸)자형 집터 |
• 두레 • 큰 새의 깃털 합장 • 편두, 문신 • 귀틀집, 반움집(주구묘) |
제천행사 | 무천(10월) | 수릿날(5월제), 계절제(10월제) |
02. 정치사
1. 가야
연맹 왕국 | 고대 국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연맹왕국 단계에서 멸망 | |
발전 | • 전기 가야 연맹(3세기): 금관가야(김해)를 중심으로 가야연맹 형성 - 4세기 초 백제·신라의 팽창으로 약화 - 고구려 광개토대왕 군대의 공격으로 연맹 해체 • 후기 가야 연맹(5세기 후): 대가야(고령)를 중심으로 형성 - 장수왕의 남하에 대항(신라·백제와 동맹) - 대가야 이뇌왕과 신라 법흥왕의 결혼 동맹(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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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 • 금관가야 멸망(532): 신라 법흥왕에 멸망 • 백제 성왕과 연합, 신라 공격 → 패배(554) • 대가야 멸망(562): 신라 진흥왕에 멸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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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 벼농사 발달, 중계무역(금관가야, 한군현, 왜와 중계무역) • 선진적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철 수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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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토기 | 일본 스에키 토기에 영향 |
고분 | 덧널무덤(김해 대성동, 부산 복천동), 구덩식 돌방무덤(고려 지산동) |
2. 고구려
1~2세기 | 태조왕 | 옥저 복속, 계루부 고씨의 왕위세습 |
고국천왕 | 진대법 실시(국상 을파소의 건의), 왕위의 부자 세습 | |
3세기 | 동천왕 | 오와 교류, 위 견제 → 위 관구검의 침입, 서안평 공격 |
4세기 | 미천왕 | 서안평 점령(5호 16국의 혼란기 이용), 낙랑·대방 축출 |
고국원왕 | 전연 모용황(선비족)의 침입, 백제 근초고왕의 침입 → 고국원왕 전사 | |
소수림왕 | 불교 수용, 태학설립, 율령반포 | |
광개토대왕 | • 영토 확장: 요동 차지, 만주 점령, 한강 이북 점령 • ‘영락’연호 사용 • 신라에 침입한 왜구 격퇴: 호우명그릇, 광개토대왕릉비(장수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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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 장수왕 | • 평양 천도(427), 한성 함락(475): 죽령~남양만 판세, 중원고구려비 • 남북조와 다면 외교, 지두우 분할 점령(흥안령 일대) • 경당 건립 |
문자왕 | 부여 복속(494) → 최대 영토 | |
6세기 | 영양왕 | 온달의 한강 수복 시도, 살수 대첩(612, 을지문덕), 신집 5권(이문진) |
영류왕 | 천리장성 축조(631~647, 부여성~비사성), 연개소문의 정변(642) | |
7세기 | 보장왕 | 여·당 전쟁: 안시성 전투(645, 양만춘), 멸망(668) |
3. 백제
3세기 | 고이왕 | 율령 반포, 6좌평제, 16관등제, 공복제(자·비·청) 등, 한강 점령, 목지국 병합 |
4세기 | 근초고왕 | • 정복 활동: 평양성 공격(고국원왕 전사), 마한 정벌 등 • 고대 상업권 형성: 요서·산둥·규슈 진출 • 왕위의 부자 상속, 칠지도, 『서기』(고흥) 등 |
침류왕 | 불교 수용 | |
5세기 | 비유왕 | 신라 눌지마립간과 나·제 동맹 체결(433) |
개로왕 | 북위 국서, 장수왕의 침입으로 한강 함락(475) → 개로왕 전사 | |
문주왕 | 웅진 천도, 왕권 약화 | |
동성왕 | 탐라 복속(498), 신라 소지마립간과 결혼 동맹(493) | |
6세기 | 무령왕 | 22담로(왕족 파견), 남조의 양과 친교[영동대장군 관직, 사신 파견(양직공도)] |
성왕 | • 사비 천도·국호 남부여 변경(538), 체제정비(중앙 - 22부, 지방 - 5부 5방 ) • 일본에 불교 전파: 노리사치계(552) • 신라 진흥왕과 함께 한강 수복 → 진흥왕의 배신,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5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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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 무왕 | 미륵사 건립(익산), 익산 천도 계획 |
의자왕 | 해동증자, 대야성 점령(642), 당항성 공격, 멸망(660) |
4. 신라
4세기 | 내물마립간 | • 김씨 왕위 세습, 마립간(대군장) 칭호, 왜구 격퇴(고구려 광개토 대왕의 도움) • 정복 활동: 낙동강 진출, 전진과 수교 |
5세기 | 눌지마립간 | 나·제 동맹(백제 비유왕, 433), 불교 전래, 왕위의 부자 상속 |
소지마립간 | 우역 설치, 시장 개설, 결혼 동맹(백제 동성왕, 493) | |
6세기 | 지증왕 | • 국호 신라, 왕호 왕 • 중국식 군현제, 아시촌소경(최초 소경), 우산국 정벌, 동시전 설치, 우경, 순장 금지 • 포항 중성리비, 영일 냉수리비 |
법흥왕 | • 통치 조직 정비: 율령 반포, 관등 정비, 상대등 설치, 병부 설치, 골품제 정비 • 건원 연호 사용(신라 최초) • 불교 공인(527, 이차돈의 순교), 대가야와 혼인동맹(522), 금관가야 정벌(532) • 울진 봉평비, 영천 청제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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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 • 한강 점령: 단양적성비(551), 신주 설치(553), 북한산비(555) • 가야 정벌: 창녕비 건립(561), 대가야 정벌(562) • 함경도 진출: 황초령비·마운령비 건립(568) • 화랑도 개편, 『국사』(거칠부), 개국·대창·홍제 연호, 황룡사 창건, 불교 교단 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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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 진평왕 | 건복 연호, 걸사표(원광법사) |
선덕여왕 | • 인평 연호, 황룡사 9층 목탑(자장의 건의), 첨성대, 분황사, 영묘사 건립 • 대야성 함락 당함(백제. 642), 백제와 고구려의 당항성 공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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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덕여왕 | 태화 연호, 성골 마지막 왕, 집사부 설치, 나당 동맹(642) 체결 |
5. 대외관계 및 삼국 통일
여수 전쟁 | 고구려의 선제 공격(영양왕, 598) → 수의 1차 침입(598, 수 문제) → 수의 2차 침입(612, 수 양제), 살수대첩(을지문덕) → 수의 3, 4차 침입 → 수 멸망(618) |
여당 전쟁 | 당 건국(618) → 연개소문의 실권 장악(천리장성 축조, 보장왕 옹립) → 당의 1차 침입(645, 안시성 전투-양만춘) → 당의 2차(647)·3차(648) 침입 |
나당 동맹(648) | 신라 진덕여왕, 김춘추 주도 |
백제 멸망(660) | • 당 소정방, 신라 김유신 VS 백제 계백(황산벌 전투) • 당-웅진 도독부 설치(660) • 백제 부흥운동: 복신·도침(주류성), 흑치상지(임존성), 부여풍 추대 • 백강 전투(663) 패배, 당-계림 도독부 설치(663) |
고구려 멸망(668) | • 신라 김인문, 당 설인귀, 이세적 → 평양성 함락 • 당-웅진 도호부 설치(668) • 고구려 부흥운동: 고연무(오골성), 검모잠(한성), 안승(신라 망명, 보덕국 왕의 추대,674) |
나당 전쟁 | 사비 점령 이후 소부리주 설치(671), 매소성 전투(675), 기벌포 전투(676) |
6. 남북국 시대
(1) 중대와 하대 비교
구분 | 중대 | 하대 |
권력 | 왕권 강화, 집사부 시중 강화 | 상대등 세력 강화, 왕권 약화 |
진골 | 약화 | 강화 |
6두품 | 왕과 결탁, 집사부 시랑직 | 호족과 결탁, 반신라적 |
토지 | 관료전 지급, 녹읍 폐지→부활, 정전 지금 | 녹읍 |
사상 | 교종의 유행 | 선종의 유행, 풍수지리설 도입 |
예술 | 조형 미술의 발달 | 조형 미술의 침체, 승탑 |
유학 | 국학 설립(신문왕) | 독서삼품과(원성왕) |
(2) 신라 중대
7세기 | 무열왕 | 최초의 진골왕, 백제 정벌(660), 사정부 설치, 갈문왕 제도 폐지, 중국식 왕명 |
문무왕 | 고구려 정벌(668), 삼국 통일 완성(676), 외사정 파견, 대왕암·부석사·안압지 등 | |
신문왕 | • 김흠돌의 모반 사건(681), 전제왕권 강화 • 통치 정비: 중앙 14부, 지방-9주 5소경, 군사-9서당 10정, 국학 설치, 관료전 지급 (687), 녹읍 폐지(689) • 안승 진골 임명, 대문의 난 진압, 달구벌 천도 계획, 만파식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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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소왕 | 서시전, 남시전 설치 | |
8세기 | 성덕왕 | 정전 지급(722), 발해 공격(733), 국학 정비(공자·10철의 화상), 상원사 종(현존 최고) |
경덕왕 | 지명·관직명 중국식 개칭, 녹읍 부활(757), 석굴암 불국사 건립, 성덕대왕 신종 주조 시작 | |
혜공왕 | 96각간의 난, 대공의 난, 김지정의 난, 중대 마지막 왕 |
(3) 신라 하대
8세기 | 선덕왕 | 신라 하대 시작(내물계 진골) |
원성왕 | 독서삼품과(귀족 반발로 실패) | |
9세기 | 헌덕왕 | 김헌창의 난(822), 김범문의 난(825) |
흥덕왕 |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828), 사치금지령 | |
문성왕 | 장보고의 난(849) | |
진성여왕 | 원종과 애노의 난(889), 적고적의 난(896), 최치원의 시무 10조, 삼대목 편찬 | |
10세기 | 경순왕 | 신라 마지막 왕, 최초 사심관 |
(4) 발해
왕 | 시기 | 연호 | 특징 |
고왕(대조영) | 7~8세기 | 천통 | 진 건국(698), 발해 군왕 책봉(당), 국호 발해(713) |
무왕(대무예) | 8세기 전 | 인안 | 흑수부 말갈 공격, 산둥 지방 공격(장문휴 장군), 신라와 충돌 |
문왕(대흠무) | 8세기 후 | 대흥,보력 | • 당과 친선(발해 국왕 책봉), 신라와 교류(신라도), 주자감 설치 • 천도: 중경 → 상경 → 동경(성왕 때 상경으로 천도) |
선왕(대인수) | 9세기 전 | 건흥 | • 대야발의 후손, 해동성국 칭호 • 최대 영토-요동 진출, 말갈 대부분 복속, 5경 15부 62주 |
애왕(대인선) | 10세기 | 거란에 멸망(926) |
7. 고려
(1) 초기
태조(918~943) | • 민생 안정: 취민유도(조세 감면 1/10), 흑창 설치 • 호족 통합: 혼인 정책, 사성정책, 역분전 지급, 향리 자치권 인정, 사심관 제도, 기인 제도 • 북진 정책: 고구려 계승, 서경 중시(분사 제도), 만부교 사건(거란 적대시), 영토 회복(청천강~영흥) • 숭불 정책: 개태사 건립, 팔관회 중시, 승록사 설치 • 통치 규범 정립: 「정계」,「계백료서」, 훈요 10조 |
혜종(943~945) | 왕권 약화, 왕규의 난(945) |
정종(945~949) | 서경 천도 계획, 광군 설치(947), 광학보 설치 |
광종(949~975) | • 공신 숙청: 외척과 공신 세력, 지방 대호족 견제 • 왕권 강화: 노비안검법(956), 과거 제도(958, 쌍기의 건의), 공복제정(자·단·비·녹), 칭제건원 (독자적 연호 - 광덕, 준풍), 개경을 황도·서경을 서도로 격상 • 기타: 주현공부법, 송과 교류, 제위보, 국사·왕사 제도, 귀법사 창건(균여) |
경종(975~981) | 공신 주도, 반동정치, 시정 전시과(976)-관품·인품 기준 |
성종(981~997) | • 유교 정치 실현: 최승로의 5조 정적평, 시무 28조 • 중앙 통지 기구 개편(2성 6부, 도병마사, 식목도감 등), 12목 설치, 지방관 파견, 향리 제도 • 유학 진흥: 국자감 설치, 지방에 경학박사·의학박사 파견, 비서성(개경)·수서원(서경) 설치 • 민생 안정: 의창, 상평창(물가 조절) • 기타: 노비환천법, 문신월과법, 연등회·팔관회 일시 폐지, 강동 6주 획득(서희), 건원중보(철전) |
(2) 중기(10~12세기)
(3) 무신 집권기
목종(997~1009) | 개정전시과(998)-관품만 기준, 한외과 실시, 군인전 지급, 강조의 정변(1009, 현종 즉위) |
현종(1009~1031) | • 거란의 2차(현종의 나주 피난), 3차 침입 • 지방 제도 정비-5도 양계 4도호부 8목, 7대 실록, 초조대장경 간행, 연등회ㆍ팔관회 부활 • 주현공거법(향리 자제 과거 자격 부여), 향리 정원제와 향리 공복제 실시, 주창수렴법, 면군급고법 |
덕종(1031~1034) | 천리장성 축조 시작, 인주 이씨 등 보수 세력이 집권 |
정종(1034~1046) | 천리장성 완성(압록강~도련포) |
문종(1046~1083) | • 경정전시과 시행(1076), 녹봉제 실시 • 동·서 대비원(개경) 설치, 남경 설치, 기인선상법(향리 자제 기인 규제), 재면법(재해시 세금면제) • 최충이 문헌공도(9재 학당) 비롯 사학 12도 융성 → 관학 침체 |
선종(1083~1094) | 교장 조판(의천, 흥왕사에 교장도감 설치) |
숙종(1095~1105) | • 주전도감 설치(의천 건의, 화폐 발행), 남경개창도감 설치 • 별무반 조직(윤관, 1104), 기자 사당(평양), 서적포 설치(관학 진흥책) |
예종(1105~1122) | • 동북 9성 축조(1107) → 1년만에 반환 • 관학 진흥책(7재, 양현고, 청연각, 보문각), 구제도감과 혜민국, 복원궁, 감무 파견, 대성악 수입 등 |
인종(1122~1146) | 이자겸의 난(1126), 묘청의 난(1135), 경사 6학 정비, 「삼국사기」편찬(1145) |
의종(1146~1170) | 무신정변(1170) → 문벌귀족 사회 붕괴 |
명종(1170~1197) | 정중부(1170~1179) | • 중방 정치(이고, 이의방과 연합 → 제거 후 권력독점) • 서계 민란(1172, 최초), 김보당의 난(1173), 조위총의 난(1174), 공주 명학소의 난(1176, 망이·망소이의 난) |
경대승(1179~1183) | 도방 정치, 전주 관노의 난(1182) | |
이의민(1183~1196) | 중방 정치, 천민 출신, 김사미·효심의 난(1193)-신라 부흥 | |
최충헌(1196~1219) | • 문신 등용, 명종 폐위, 희종·강종·고종 등 옹립, 봉사 10조 • 만적의 난(1198), 이비의 난(1202, 신라부흥), 최광수의 난(1217, 고구려부흥) • 교정도감 설치, 도방 강화, 진강후 책봉, 흥녕부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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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1197~1204) | ||
희종(1204~1211) | ||
강종(1211~1213) | ||
고종(1213~1259) | 최우(1219~1249) | • 정방(인사 행정), 서방(문신 숙위), 삼별초, 마별초, 도방 확대(내·외도방) • 몽골 침입, 강화 천도, 팔만대장경 조판 시작, 「상정고금예문」금속활자 인쇄 • 이연년의 난(1237, 백제 부흥), 진양후 책봉, 진양부 설치 |
최항(1249~1257) | 승려 출신, 몽골의 5차·6차 침입 | |
최의(1257~1258) | 무오정변(1258)으로 최씨 정권 몰락 | |
김준(1258~1268) | • 원종 즉위, 몽골과 강화 조약(1259) → 세조구제 | 원종(1259~1274) |
임연ㆍ임유무(1268~1270) | 원종의 친몽 정책 반대, 임유무가 주화파에게 살해당함(1270) | |
개경 환도(1270), 녹과전 실시(1271) |
(4) 원 간섭기
(5) 원ㆍ명 교체기(고려 말기)
8. 조선 왕조사
(1) 15세기
태조(1392~1398) | • 국호 제정, 한양 천도, 경복궁 건립 • 도첩제 실시, 의흥삼군부 설치, 관리 선발 제도 정비, 천상열차분야지도 • 1차 왕자의 난(1398) |
정종(1398~1400) | 개경천도(1399), 도평의사사 혁파(→의정부), 중추원 폐지(→삼군부), 2차 왕자의 난(1400) |
태종(1400~1418) | • 사간원 독립(대신 견제), 한양 재천도(1405), 8도 정비, 호패법 제정, 인보법, 양전사업 • 왕권 강화: 사병 혁파, 6조 직계제, 승정원과 의금부 설치, 외척·종친 견제, 신문고 설치 • 유교 정치 강화: 사원전과 노비 몰수, 서얼차대법과 재가금지법 • 주자소(계미자), 사섬서(저화 발행),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무역소, 거북선 |
세종(1418~1450) | • 집현전 설치, 의정부 서사제, 금부삼복법(삼심제), 노비 사적 사형 금지 • 지방: 원악향리처벌법, 부민고소금지법 • 대외관계: 4군 6진 개척, 대마도 정벌, 3포 개항, 계해약조 • 문화: 4대 사고 정비, 갑인자ㆍ경자자 주조, 「여민락」, 정간보, 내불당, 「칠정산」, 과학기구 개발(측우기, 자격루, 앙부일구 등), 훈민정음 창제, 「농사직설」,「삼강행실도」 간행 • 경제: 공법(연분9등법, 전분6등법), 조선통보 발행 |
충렬왕(1274~1298,1298~1308) | • 일본 원정(2차–정동행성), 원의 간섭-관제 격하(1부 4사), 왕실 용어 격하, 몽골풍 유행 • 홍자번의 편민 18사, 동녕부와 탐라총관부 반환, 「삼국유사」, 「제왕운기」 저술 • 관학진흥책: 경사교수도감 설치, 섬학전, 문묘 설치 |
충선왕(1298~1298,1308~1313) | • 정방 폐지, 사림원 설치, 재상지종(왕실 근친혼 금지, 권문세족) • 조비무고사건으로 원으로 소환 → 원 무종 옹립에 기여, 심양왕 책봉, 고려왕 겸직 • 각염법 제정·의염창 설치(소금의 전매제 실시), 전농사 설치, 농무사 파견 • 충숙왕에게 선위 후 원 연경에 만권당 설치(이제현, 원의 조맹부 교류) |
충숙왕(1313~1330,1332~1339) | 찰리변위도감 설치, 입성책동(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
충혜왕(1330~1332,1339~1344) | 편민조례추변도감 설치: 개혁 시도, 왕권 강화와 국가 재정 확보 목적 |
충목왕(1344~1348) | 응방 폐지, 정치도감 설치, 정방 폐지 시도, 녹과전의 폐단 시정 |
공민왕(1351~1374) | • 반원 자주 정책: 기철(친원파) 숙청,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관제 복구, 몽골풍 금지, 쌍성총관부 수복(1356, 유인우·이자춘), 원 나하추 격퇴(1362, 이성계), 요동 공략(1369, 이성계·지용수) • 홍건적의 침입(1359, 1361): 2차 침입 때 복주(안동) 피난 → 흥왕사의 변(1363, 김용) • 왕권 강화 정책 : 정방 폐지(1352), 전민변정도감(1366, 신돈 등용), 성균관 정비(1367, 이색), 과거제 정비, • 개혁 실패: 원의 압력, 권문세족의 반발, 신진 사대부 세력 미약, 공민왕의 시해(자제위),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 등 |
우왕(1374~1388) | • 이인임의 권력 장악 → 이인임 일파 제거(최영, 이성계의 집권) • 명의 철령위 설치 요구 → 요동 정벌(최영, 우왕) → 위화도 회군(1388) |
창왕(1388~1389) | 쓰시마섬 정벌(1389, 박위), 폐가입진으로 폐위 → 공양왕 옹립 |
공양왕(1389~1392) | • 과전법 실시(1391), 저화 발행(1391, 유통 ×), 무과 실시 • 공양왕 폐위 → 조선 건국(1392), 이성계 즉위 |
문종(1450~1452) | 왕권 약화, 「고려사」,「고려사절요」,「동국병감」등 편찬 |
단종(1452~1455) | 왕권 약화, 계유정난(1453)-김종서, 황보인 등 숙청, 이징옥의 난(1453) |
세조(1455~1468) | • 왕권 강화: 집현전ㆍ경연 폐지, 6조 직계제, 종친 등용, 사육신 제거, 이시애의 난(1467) • 경제: 직전법 실시, 팔방통보(전폐), 내수사 설치 • 체제 정비: 5위, 5위 도총부, 진관체제, 보법, 「경국대전」 편찬 시작, 북방 개척(신숙주, 남이) • 문화: 간경도감, 원각사지 10층 석탑, 인지의(규형) 제작 |
성종(1469~1494) | • 홍문관 설치, 경연 부활, 사림 등용(김종직 등), 유향소 복립, 오가작통제, 창경궁, 여진 정벌 (윤필상, 허종), 간경도감 폐지, 도첩제 폐지등 •「경국대전」완성,「동국여지승람」,「동문선」,「국조오례의」,「악학궤범」,「동국통감」등 • 경제: 관수관급제 실시 |
(2) 16세기
연산군(1494~1506) | • 경연 중단, 언론 탄압(홍문관, 예문관, 사간원 폐지), 언문청 폐지, 신언패 • 무오사화(1498), 갑자사화(1504) |
중종(1506~1544) | • 조광조의 기호 사림 등용, 기묘사화(1519) - 조광조의 개혁정치: 현량과 실시, 「소학」,「주자가례」 중시, 향약 보급, 경연 활성화, 방납의 폐단 시정, 위훈 삭제 주장 • 삼포왜란(1510)-비변사 설치, 임신약조(1512), 사량진왜변(1544)-정미약조(1547), 군포징수제 |
명종(1545~1567) | • 윤원형(소윤)의 척신정치, 을사사화(1545) • 을묘왜변(1555)-비변사 상설화, 제승방략 체제, 직전법 폐지, 임꺽정의 난(1561, 백정, 황해도) |
선조(1567~1608) | • 붕당 성립[을해당론(1575)] - 동인과 서인 • 동인 분화: 기축옥사(1589), 세자건저의(1591) 문제 - 북인과 남인 • 임진왜란(1592), 이몽학의 난(1596), 조선 통신사(1607~), 훈련도감·속오군 설치 |
▶ 사화의 전개
사화 | 시기 | 원인 | 가해자 | 피해자 |
무오사화 | 1498(연산군) | 김종직의 「조의제문」 | 유자광, 이극돈, 윤필상 | 김종직, 김일손, 김굉필 등 |
갑자사화 | 1504(연산군) | 궁중파와 부중파의 대립, 윤씨 폐비 사건 |
임사홍, 신수근 | 윤필상, 김굉필, 한명회 등 |
기묘사화 | 1519(중종) | 조광조의 위훈 삭제 | 남곤, 심정, 홍경주 | 조광조, 김안국 |
을사사화 | 1545(명종) | 대윤과 소윤의 대립 | 윤원형, 정순명 | 윤임, 이언적 |
▶ 동인과 서인
동인 | 서인 | |
학파 | 이황과 조식의 영남학파 | 이이와 성혼의 기호학파 |
성향 | 척신정치에 강경파, 주리론 | 척신정치에 온건파, 주기론 |
대표자 | 김효원 중심 → 조식, 유성룡, 이산해 | 심의겸 중심 → 기대승, 윤두수, 정철 |
분열 | 정여립 모반사건 → 북인과 남인의 분열 | 경신환국 이후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 |
▶ 서인과 남인
서인 | 남인 | |
학파 | 주리론의 기호학파, 사서(四書) 중심 | 주리론의 영남학파, 6경(六經) 중심 |
성향 | • 신권 강화 • 노비 속량·서얼 허통에 적극적, 상공업 호의적 |
• 왕권 강화 • 기존 사회 체제 유지, 상공업 소극적, 농업 중심 |
대표자 | 송시열, 송준길 | 허적, 허목, 윤선도 |
분열 | 경신환국 이후 노론과 소론 | 예송논쟁 이후 탁남과 청남 |
(3) 17세기
광해군(1608~1623) | • 북인 집권(대북), 폐모살제(계축옥사, 1613), 명·후금 사이의 중립외교, 기유약조(1609), 대동법 시행(경기도,1608), 「동의보감」간행, 5대 사고 설치 • 인조반정(1623): 서인 주도, 남인 참여, 북인 몰락 |
인조(1623~1649) | • 군영 정비(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영정법(1635), 대동법 확대(강원도) • 이괄의 난(1624), 친명배금 정책 → 정묘호란(1627) • 청의 군신관계 요구, 척화파(윤집) vs 주화파(최명길) → 병자호란(1636) |
효종(1649~1659) | • 북벌(어영청 강화, 송시열·송준길 등), 나선정벌[차(변급, 1654), 2차(신유, 1658)] • 대동법 확대(충청도와 전라도), 「농가집성」(신속), 시헌력 채택(김육), 하멜 표류 |
현종(1659~1674) | 예송논쟁 - 1차(기해, 1659), 2차(갑인, 1674) |
▶ 예송논쟁
서인 | 남인 | |
배경 | 효종의 정통성과 서인과 남인의 정치 철학, 예학의 차이 | |
기해예송(1659, 효종의 죽음) | 1년복(기년설) | 3년복 |
갑인예송(1674, 효종비의 죽음) | 9개월복(대공설) | 1년복(기년설) |
정치적 입장-근거 | 왕사동례, -「주자가례」 | 왕사부동례 -「국조오례의」 |
결과 | • 남인의 권력 장악과 분열 → 탁남(허적, 온건파), 청남(허목, 강경파) • 탁남의 북벌 운동: 허적, 윤휴 - 청의 오삼계의 난으로 북벌 주장 |
(4) 18세기
숙종(1674~1720) | • 붕당 정치의 변질, 서인의 일당 전제화, 명목상의 탕평론, 환국 정치 • 경신환국(1680): 유악 사건, 남인 역모사건(삼복의 변) → 서인 집권, 서인의 분열(노론, 소론) • 기사환국(1689): 장희빈의 아들의 세자 책봉 문제 → 남인 재집권, 인현왕후 폐위, 송시열 사사 • 갑술환국(1694): 노론의 인현왕후 복위 운동 → 소론 집권(남구만, 박세채 등), 인현왕후 복위 • 무고의 옥(신사환국, 1701): 인현왕후 저주 사건 → 장희빈 사사, 노론 집권 • 병신처분(1716): 회니시비(송시열 지지 노론과 윤증 지지 소론의 논쟁) → 숙종의 노론 지지 • 정유독대(1717): 노론 영수 이이명과 숙종의 독대 • 안용복의 활약(1693,1696), 백두산정계비(1712) 등 |
경종(1720~1724) | 신임사화: 신축옥사(1721, 왕세제 대리 청정 문제)와 임인옥사(1722, 목호룡의 고변 사건) → 소론이 노론의 4대신 제거 |
영조(1724~1776) | • 이인좌의 난(1728, 소론 강경파와 남인 주도), 나주 괘서 사건(1755, 소론 윤지 주도) • 완론 탕평: 탕평파 중심 • 임오화변(1762): 사도세자의 죽음 → 벽파(노론)·시파(노론 일부, 소론, 남인)로 분열 • 정치 개혁: 산림 부정, 서원 정리, 이조 전랑의 후임자 추천권(자대권)과 3사 선발권(통청권) 폐지 • 사회 개혁: 노비종모법, 신문고 부활, 상언과 격쟁, 형벌 완화, 청계천 준설, 균역법, 수성윤음 • 편찬: 「동국문헌비고」,「속대전」,「속병장도설」,「속오례의」 등 |
정조(1776~1800) | • 준론 탕평: 남인 시파 등용, 탕탕평평실 편액, 탕평파 견제(노론 벽파, 외척) • 왕권 강화: 규장각, 초계문신제, 장용영 , 문체반정, 수령의 향약 통제, 만천명월주인옹 • 사회 개혁: 신해통공, 공장안 폐지, 제언절목, 노비추쇄 폐지, 상언과 격쟁, 신해박해(윤지충 순교), 정리자·생생자 주조, 화성 건립, 대유둔전, 현륭원(사도세자) 등 • 편찬: 「고금도서집성」수입, 「일성록」,「대전통편」,「추관지」,「탁지지」,「무예도보통지」 |
- 11 -
▶ 노론과 소론
노론 | 소론 | |
중심인물 | 송시열 | 윤증 |
주장 | 대의명분 존중, 민생안정, 자치자강 강조 | 실리 추구, 적극적인 북방 개척 강조 |
왕위 추대 | 연잉군(영조) 추대 | 경종 추대 |
성리학 경향 | 성리학 절대시 → 주자 중심 성리학 고수 | 성리학의 탄력적 이해 → 양명학·노장 사상에 개방적 |
(5) 19세기
순조(1800~1834) | • 벽파의 정권 장악, 정순왕후 사후 안동 김씨 세력 장악 • 신유박해(1801), 공노비 해방(1801), 장용영 폐지, 홍경래의 난(1811), 조선 교구(1831) 형성 |
헌종(1834~1849) | • 풍양 조씨 정권 장악 • 기해박해(1839, 정하상의 상재상서), 병오박해(1846, 김대건 신부 순교) |
철종(1849~1863) | • 안동 김씨 정권 장악 • 신해허통(1851, 서얼 청요직 진출 허용), 동학 발생(1860), 임술농민봉기(1862, 진주민란, 삼정이정청) |
03. 정치 조직
1. 중앙 정치 조직
(1) 삼국의 통치 조직
(2) 통일 신라와 발해의 통치 체제
고구려 | 백제 | 신라 | ||
관등 | 14관등(형·사자 계열) | 16관등(솔·덕 계열) | • 경위제: 17관등(찬 계열) • 외위제: 11관등 |
|
복색 | • 자·비·청 • 6관등 나솔 이상 - 은제관식 |
• 자·비·청·황 • 복색 - 관등에 따라 |
||
중앙관제 | 좌보, 우보 → 국상 → 대대로 | 6좌평(고이왕) → 22부(성왕) | 위화부(인사), 집사부 등 | |
합의제 | 제가회의 | 정사암회의 | 화백회의(만장일치) | |
수상 | 대대로, 막리지 | 상좌평 | 상대등 | |
지방 행정 |
중앙 | 5부 | 5부(달솔) | 6부 |
지방 | 5부(욕살)-성(처려근지, 도사) | 5방(방령)-10군(군장) | 5주(군주)-군(태수)-현(현령) | |
특수 | 3경(평양성, 국내성, 한성) | 22담로(무령왕) | 3소경(중원경,동원경,아시촌소경) | |
군사 | • 평시: 성주, 족장 • 전시: 대모달, 말객 |
• 중앙: 서당 • 지방: 6정 |
통일 신라 | 발해 | |
중앙 정치 |
• 집사부 시중(중시) 지위 강화(국정총괄) • 위화부 등 14부 • 사정부 설치: 감찰 기능, 무열왕 |
• 3성 6부제(당 제도 모방, 독자적 운영) • 정당성(대내상, 국정 총괄) • 중정대(비리 감찰), 문적원(서적 관리), 주자감(교육) |
지방 행정 |
• 9주 5소경 체제(신문왕) - 9주(도독)-군(태수)-현(현령)-촌(촌주) - 5소경(사신): 수도 보완, 지방 세력 견제 • 외사정(지방관 감찰), 상수리 제도 • 특수 행정 구역: 향, 부곡 |
• 5경 15부 62주(선왕) - 5경(전략적 요충지) - 15부(지방 행정 중심지, 도독 파견) - 62주(자사), 현(현승) • 촌락: 말갈족으로 구성 |
군사 조직 |
• 중앙군: 9서당 - 민족융합 • 지방군: 10정(1주에 2정, 한주에 2정) |
• 중앙군: 10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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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려의 통치 조직
① 고려 전기(⇒ 원간섭기)
② 도병마사와 식목도감
③ 대간(대성, 성대)
④ 무신 집권기
(4) 조선의 중앙 통치 기구
2성⇒첨의부 | 중서문하성 (문하시중⇒첨의중찬) |
재신(2↑) | 정책결정·논의 | 6부 | 이부⇒전리사 | 문관 인사, 공훈 |
낭사(3↓) | 간쟁 | 병부⇒군부사 | 무관 인사 | |||
상서성(상서령) | 정책 집행 | 호부⇒판도사 | 호구, 조세, 화폐 | |||
형부⇒전법사 | 법률, 소송, 노비 | |||||
예부⇒전리사 | 외교, 교육, 과거 | |||||
공부⇒폐지 | 토목, 건축 | |||||
중추원 | 추밀(2↑) | 군국기무 | 군사업무 → 조선의 의흥삼군부 | |||
승선(3) | 왕명 출납 | 조선의 승정원 | ||||
삼사 | 판사 | 곡식 출납, 회계 업무 | 후기에 도평의사사 참석 | |||
어사대⇒감찰사 | 판사 | 관리 감찰, 탄핵 | 조선의 사헌부 | |||
한림원⇒문한서 | 외교 문서, 왕의 교서 작성 | 조선의 승문원, 예문관 |
기구 | 구성 | 기능 | 변화 |
도병마사 | 재신 + 추밀 | 국방문제 논의, 만장일치(합좌) | 도평의사사로 개편(충렬왕), 국정 전반 논의 |
식목도감 | 법 제정 및 시행 규칙 제정 | 후기에 기능 축소 |
구성 | 어사대(대관)와 중서문하성의 낭사(간관) |
권한 | 서경(관리 임명과 법령의 개폐 시 동의권), 간쟁(왕의 잘못 논함), 봉박(왕명 거부권) → 견제와 균형 |
중방 | 무신 집권기 초기 최고 권력 기구 |
교정도감 | 최충헌 설치 → 교정별감 직위, 최고 권력 기구, 무신 집권기 내내 유지(최충헌~임유무) |
정방 | 최우 설치, 인사 행정담당, 정색승선(문관) → 무신 집권기 이후 존속, 충선왕과 공민왕 때 폐지 |
서방 | 최우 설치, 문신들의 자문 기구(이규보, 최자 등) |
사병기구 강화 | 도방(경대승, 최충헌 강화, 최우는 내도방과 외도방으로 확대 ), 삼별초(최우), 마별초(최우) |
의정부 | • 재상 합의로 국정 총괄, 정책 결정 기구 • 구성: 영의정(수상), 좌·우의정(정1품)-좌·우찬성(종1품)-좌·우참찬(정2품) |
|
6조 | • 정책 집행 기구 • 구성: 6조 판서(정2품)-참판(종2품)-참의(정3품)-전랑(5품 전랑+6품 좌랑) |
|
3사 | 사헌부(대사헌-종2품):관리 감찰, 탄핵 | 대간(양사)→ 서경권 행사(5품이하 관원 임명 시), 간쟁, 봉박 |
사간원(대사간-정3품):간쟁 | ||
홍문관(옥당, 대제학-정2품): 국왕 자문(문한 기능), 경연과 서연 담당 | ||
승정원 | (도승지): 왕명 출납, 비서 기관 → 6승지(모두 정3품의 당상관으로 구성) | 왕권 강화와 유지 |
의금부 | (판사-종1품): 국가의 큰 죄인 처단, 국왕 직속 사법 기관 | |
기타 | 한성부(판윤-정2품): 서울의 행정과 치안 담당 | 성균관(대사성-정3품): 최고 교육 기관 |
춘추관: 역사 편찬과 보관 | 예문관: 국왕의 교서 작성 | |
교서관: 궁중 서적 인쇄 | 상서원: 옥새와 마패 제작 관리 | |
승문원: 외교 문서 작성 | 포도청(포도대장-종2품): 일반 상민의 범죄 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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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변사
2. 지방 행정 조직
(1) 고려의 지방 통치 조직
(2) 조선의 지방 행정 조직
설치 | 삼포왜란(중종) 계기: 여진과 왜의 침략에 대비, 임시 기구 |
변화 | • 을묘왜변(명종) 계기: 상설 기구화, 전국의 국방 담당 • 임진왜란 이후: 최고의 권력 기구(국정 전반 총괄, 군사+정치) • 세도정치 시기: 세도 가문이 요직 장악, 참여 인원 증가, 기능 강화 |
구성원 | 3정승, 5조 판서와 참판(공조 제외), 홍문관 대제학, 강화 유수, 군영 대장 등 |
영향 | 비변사 강화 → 의정부ㆍ6조 기능 약화, 지역별ㆍ행정부서별 현안 무시 |
혁파 | 흥선 대원군(고종) - 비변사를 혁파, 의정부·삼군부 부활 |
5도 | • 일반 행정구역(상설기관 ×): 서해도, 양광도, 교주도, 경상도, 전라도 ⇒ 주·군(자사)·현(현령) 설치 • 안찰사(5~6품) 파견: 경관직으로 6개월간 도내 순찰(임시) |
양계 | • 군사 행정 구역: 동계·북계 ⇒ 진 • 병마사(3~5품) 파견: 임기 6개월 상주직, 민정 + 군정 |
경기 | 현종 때 설치, 중앙 정부에서 직접 통치 |
3경 | • 성종: 개경(부윤), 서경, 동경(유수) • 문종: 남경 승격, 동경 제외 |
특수행정구역 | • 향·부곡·소: 양인 신분, 일반 양민에 비해 제약 多 - 제약: 많은 세금 부담, 거주 이전 금지, 과거 응시 불가 - 향·부곡(신라, 농업), 소(고려, 수공업, 광물·해산물 납부 등) |
기타 | 계수관: 3경, 4도호부(군사 거점), 8목 등 중간행정 구역 |
특징 | • 주현(지방관 파견)보다 속현(지방관 파견되지 않음)이 더 많음 → 향리의 자치권 강함, 불완전한 중앙집권 •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던 속현과 향·부곡·소에 감무 파견(예종) |
8도 | 관찰사(감사) 파견 - 임기 1년, 당상관 이상, 절도사 겸직, 감영에 상주 - 행정·사법·군사권 행사, 수령 지휘ㆍ감독 |
부ㆍ목ㆍ군ㆍ현 | 수령(목민관) 파견 - 부윤(종2품)·부사(정3품), 목사(정3품), 군수(종4품), 현령(종5품)·현감(종6품): 병렬적 구조 - 임기 5년, 참상관, 동헌에 근무, 행정ㆍ사법ㆍ군사권 - 수령 7사: 농상성, 호구증, 학교흥, 군정수, 부역균, 사송간, 간활식 |
향리 | 6방에 소속, 수령의 행정 실무를 보좌하는 세습적 아전으로 격하, 무보수 |
면ㆍ리ㆍ통 | 군ㆍ현 아래 설치 → 면-면장, 리-리정, 통-통주 임명 |
유향소 (향소, 향청) |
• 구성: 향촌의 덕망 있는 재지 사족, 책임자는 좌수ㆍ별감 • 역할: 향촌 자치, 수령 보좌, 향리 규찰, 풍속 교정, 백성 교화 등 • 변화: 태조 때 신설 → 태종 때 폐지 → 세종 때 부활 → 세조 때 폐지[이시애의 난(1467)을 계기] → 성종 때 부활 • 향회(총회), 향규(규칙), 향안(명단) |
경재소 | • 구성: 지방 출신 중앙 고관 • 기능: 유향소와 정부의 연락 기능 및 지방의 유향소 통제 • 폐지: 임진왜란 이후 경재소 폐지(선조, 1603) |
기타 | • 경저리: 서울에 머무르는 지방 향리 → 군현의 원활한 군역 징발과 공납 납부 • 영저리: 감영에 머무르는 지방 향리 → 감영과 군현의 연결 |
특징 | 향·부곡·소 소멸, 속군ㆍ속현의 소멸, 모든 지방에 지방관 파견, 향리의 지위 약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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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군역 제도와 군사 조직
(1) 고려의 군사조직
(2) 조선 시대 군역 제도와 군사 조직
① 조선 전기의 군사 조직
② 조선 후기의 군사 제도
4. 관리 선발 제도
(1) 고려의 과거제도
응시 | 양인 이상이면 응시 가능, 향·부곡·소민은 응시 불가, 3년마다 실시(식년시), 격년시 유행 |
종류 | • 문과: 제술과(문학적 재능, 정책 시험), 명경과(유교 경전 이해) → 귀족·향리 자제 응시 • 잡과: 기술관 선발, 법률(명법업)·의술(의업)·회계(명산업)·지리(지리업) 등, 백정이 주로 응시 • 승과: 승려 응시, 교종선·선종선, 합격자에게 ‘대덕’의 법계를 줌 |
절차 | • 1단계 - 향시: 상공(개경), 향공(지방), 빈공(외국인) • 2단계 - 국자감시(사마시, 진사시): 상공, 향공, 빈공이 응시 • 3단계 - 예부시(동당시): 초시-복시-친시, 국자감시 합격자와 현직 관료 응시 |
특징 | 좌주(지공거, 감독관)-문생(합격자)제 |
중앙군 | 2군 | 왕의 친위 부대, 응양군·용호군 |
6위 | • 좌우위·신호위·흥위위: 개경, 변방 수비 • 금오위: 수도 친안, 경찰 업무 • 천우위: 의장대 • 감문위: 궁성 수비 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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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 군인으로 편성, 군인전 지급, 군역 세습, 군공을 세워 무신으로 신분상승 가능한 중류층 • 중방: 상장군(정3품)과 대장군(종3품)으로 구성된 무신 회의 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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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군 | • 주현군: 5도의 일반 군현에 주둔, 정용군·보승군·일품군 • 주진군: 양계에 주둔, 좌군·우군·초군으로 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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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군 | • 광군(정종): 거란의 침입에 대비, 광군사 관장, 현종 때 주현군에 편입 • 별무반(숙종): 여진 정벌 목적, 신기군·신보군·항마군 구성 • 삼별초(최우): 최씨 무신정권의 사병 역할, 좌별초·우별초·신의군 구성 • 연호군(고려말): 왜구 침략에 대비, 농민과 노비로 구성 |
중앙군 | • 5위: 궁궐과 서울 방어, 정군을 중심, 갑사·특수병으로 구성, 5위도총부 지휘(문관) • 내삼청: 국왕 호위와 궁궐 숙위, 내금위(태종)·겸사복(태종)·우림위(성종)로 구성 |
지방군 | • 영진군: 농민들이 영과 진에서 교대 근무(병영, 수영) • 방어체제: 진관체제(세조) - 지역 단위 독자적 방어 체제(수령 지휘) |
잡색군 | 서리·잡학인·신량역천인·노비 등으로 구성, 일종의 예비군(농민 제외) |
중앙군 | 5군영 | 구성 | • 선조: 훈련도감(직업적 상비군, 삼수병-포수·사수·살수) • 인조: 어영청(북벌의 본영), 총융청(북한산성에 배치), 수어청(남한산성에 배치) • 숙종: 금위영(궁성 수비) |
특징 | 임기응변적, 서인의 군사 기반 | ||
지방군 | • 속오군: 양천 혼성군, 평상시에 생업에 종사, 유사시 전투에 동원 • 방어체제: 제승방략 체제(16세기, 대규모 적 방어)→ 속오군 체제(속오법에 따라 진관 복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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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의 과거제도
04. 경제사
1. 통일신라 민정문서
2. 고려의 전시과 제도
응시 | 양인 이상이면 응시 가능(서얼과 상인, 수공업자 등은 문과 제한) | ||
실시 | • 3년마다 보는 식년시 원칙 • 별시: 증광시(나라에 경사), 알성시(국왕의 성균관 행차) 등 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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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문과 | 소과 | • 생원과와 진사과로 구분, 초시ㆍ복시 실시, 백패 수여 • 초시(도별 인구 비례, 700명) → 복시(성적순, 각 100명) • 특권: 하급 관리 진출, 군역 면제, 성균관 입학 가능 |
대과 | • 초시(도별 인구 비례, 240명) → 복시(33명) → 전시(순위) • 장원은 참상관 임명, 현직 관리도 응시 가능, 홍패 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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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과 | • 병조 담당, 홍패 지급 • 초시(190명) → 복시(28명) → 전시(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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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과 | • 해당 관청에서 주관 • 역과(사역원 19명), 의관(전의감 9명), 율과(형조 9명), 음양과(관상감 9명) 선발 • 초시·복시 절차, 백패 수여, 주로 중인이 응시 |
발견 | 일본 동대사(東大寺) 정창원(正創院) |
시기 | 통일 신라 경덕왕, 헌덕왕 시절로 추정 |
작성 | 촌주(서원경 부근의 4개 촌락), 3년마다 재작성, 조사는 매년 |
목적 | 노동력과 생산 자원의 관리 |
내용 | • 노동력 - 호별 조사: 인정의 다과, 9등호 - 남녀별ㆍ연령별: 6등급, 전체 연령, 노비 노동력 조사, 증감 기록 • 가축과 유실수: 촌락별 조사, 변동 사항 조사 • 토지: 연수유전답(다수), 촌주위답, 내시령답, 관모답, 마전 공동체적 경작 |
대상 | 기준 | 특징 | |
역분전 (태조,940) |
개국공신 | 공훈, 인품 | 논공행상적 성격 |
시정전시과 (경종,976) |
전ㆍ현직 관리 | 관품, 인품 | • • 관품 인품: : 자 충성도ㆍ명망 (18등급)ㆍ단ㆍ비ㆍ녹의 공복 |
개정전시과 (목종,998) |
전ㆍ현직 관리 | 관등 인품(18 배제 관등), | • • 문무차별이 군인전 지급심화 시작, 현직과 전직의 차별(현직 우대) • 지급량 감소, 16과 이하 시지 미지급 |
경정전시과 (문종,1076) |
현직 관리 | 관등(18등급) | • 문무차별이 완화, 군인대우 향상 • 공음전 지급 시작, 무산계 전시, 별사전 지급 • 15과 이하 시지 미지급 • 한외과 폐지 |
특징 | • 직역을 지는 자를 18과로 구분하여 전국의 전지와 시지 지급(양계지방 제외) • 원칙적으로 세습 불허, 영업전(공음전, 공신전, 내장전, 외역전, 군인전) 세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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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의 과전법 체제
4. 조선 후기 수취 제도 변화
대상 | 특징 | 비고 | |
과전법 (공양왕, 1391) |
전ㆍ현직 관리 | • 문무 차별 소멸, 관리 직접 수조 • 병작반수 금지 • 군전: 한량에게 지급 |
• 경기도 내의 수조권 지급 • 18과(150결~10결) • 1대 한정, 세습 불가 • 공신전, 별사전 세습 |
직전법 (세조, 1466) |
현직 관리 | • 배경: 토지 부족 • 수신전, 휼양전 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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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관급제 (성종, 1470) |
• 관리 직접 수조 → 국가 수조 • 조와 세의 구별 소멸, 국가의 지배력 강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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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법 폐지 (명종, 1556) |
수조권 지급 중단 | • • 사전 전주전객제 소멸, 수조권적 소멸, 지주전호제 지배 소멸확대 | 녹봉만 지급 |
영정법(인조,1635) | 배경 | 연분 9등법의 변질 → 최저 세율인 4~6두 징수가 관례화 |
내용 | 풍흉에 관계없이 토지 1결당 4두~6두로 고정, 전분 6등법은 현상 유지 | |
결과 | 전세율은 낮아졌지만 전세 외의 부가세 징수로 농민 부담 증가 | |
양척동일법(효종,1653) | 토지 측량 시 자를 동일하게 함. | |
대동법(광해군,1608) | 배경 | 방납의 폐단 |
내용 | • 광해군(경기도)→ 인조(강원도)→ 효종(충청도,전라도)→ 숙종(경상도,황해도 12두) • 공납의 전세화: 1결당 12두 부과 • 상공의 전세화: 상공만 폐지, 별공과 진상 유지 • 선혜청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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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 • 국가수입 증가, 조세의 금납화 촉진 • 상납미 비율 증가, 유치미 비율 감소 → 농민 수탈 •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 공인의 등장, 상업 도시 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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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역법(영조,1750) | 배경 | 5군영, 모병제 → 군역 재원 감소 → 군포 부담의 불균형→ 농민 부담 가중ㆍ군역 기피 |
내용 | • 1년에 군포 2필 → 1필 징수 • 부족분 보충: 선무군관포, 결작(2두), 어세ㆍ염세ㆍ선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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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 일시적으로 농민 부담 경감, 결작을 농민에게 전가 → 농민 부담 가중 | |
수취 제도의 변화 | • 전세화 경향(→ 지주 부담 증가), 도결(정해진 전세 이상 징수), 소작농에 전가 • 총액제: 비총제(전세), 군총제(군포), 환총제(환곡) → 삼정의 문란의 원인 → 민란의 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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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사회사
1. 신라의 골품 제도
2. 고려의 신분 제도
3. 조선의 신분 제도
성립 | 각 족장 세력들을 통합ㆍ편제, 중앙 집권화 과정에서 발생 |
구성 | 골제(성골 + 진골), 두품제(6~1두품) |
성골 | 원칙적으로 왕위 계승, 마지막 성골 - 진덕여왕 |
진골 | • 각 부 장관인 령, 시중, 장군에 임명, 5관등 이상 독점, 자색 공복 가능 • 무열왕 이후 진골 출신들이 왕위 계승, 김유신 가문와 안승은 진골 받음 |
6두품(득난) | • 차관(경, 시랑)에 임명, 6관등 아찬까지 승진, 통일 이후 고구려 귀족은 6두품 • 변화: 중대 - 왕과 결탁, 하대 - 반신라, 호족과 결탁 |
3~1두품 | 통일 이후 평민화 |
특징 | • 승진 제한: 4두품 - 12관등 대사, 5두품 - 10관등 대나마, 6두품 - 아찬 • 4색 공복: 관등에 따라 차이를 둠(17~12관등-황색, 11~10관등-청색, 9~6관등-비색, 5관등 이상-자색) • 중위제: 골품 승진의 한계성 보완, 승진 한계 내에서 등급을 세분화, 4중 아찬, 10관등 9중 대나마 등 |
특징 | • 법제적 양천제(기본적 신분제), 실질적 반상제(16세기, 지배층 양반과 피지배층인 상민의 차별 ) • 엄격한 신분제 사회, 신분 이동 가능, 고려에 비해 개방적 사회 |
양반 | • 의미: 문반·무반(15세기) → 그 가족이나 가문 포함(16세기 이후) • 특권: 토지와 노비 소유(지주층), 고위 관직 독점(관료층), 각종 국역 면제 |
중인 | • 의미: 중간 계층(넓은 의미), 기술관(좁은 의미) • 서리·향리·기술관: 직역 세습, 같은 신분끼리 혼인, 관청 근처에 거주 • 서얼: 중인과 같은 신분적 처우(중서), 문과 응시 금지 |
상민 | • 농민: 조세·공납·부역 등의 의무 부담 |
귀족 | • 신분 변동: 과거를 통해 중류층의 중앙 귀족화, 중앙 귀족이 낙향하여 향리로 전락(귀향형 형벌) • 지배층의 변화: 문벌 귀족 → 무신 → 권문세족 → 신진 사대부 - 문벌 귀족: 고위 관직 차지, 대토지 소유, 왕실과의 중첩된 혼인 관계 - 무신: 무신정변을 계기로 권력 장악 - 권문세족: 원 간섭기 이후 등장, 정계 요직 장악, 음서로 신분 세습 - 신진 사대부: 과거를 통해 진출, 권문세족과 대립 → 사회 개혁과 문화 혁신 주장 |
중류 | • 구성: 잡류(중앙관청 말단 서리), 남반(궁중 실무), 향리(지방 행정 실무), 군반(하급 장교), 역리(역 관리) → 직역의 세습, 대가로 토지 지급 • 호족 출신: 대대로 호장(향리직 우두머리), 부호장 배출 → 지방의 실질적 지배층, 하위 향리와 구별 |
양민 | • 구성: 백정(일반 농민), 상인, 수공업자, 특수 집단민(향·부곡·소, 역·진) • 백정: 직역이 없는 일반 농민, 법제적으로 과거 응시 가능, 조세·공납·역 의무, 일부 소작농으로 전락 • 특수 집단민(향ㆍ부곡ㆍ소): 일반 양민보다 세금 부담, 거주 이전 금지, 과거 응시 불가 • 화척(도살업), 진척(뱃사공), 재인(광대)은 최근 양민으로 분류됨(신량역천) → 호적 등재×, 역부담× |
천민 | • 구성: 대다수 노비 - 공노비(입역 노비·외거 노비), 사노비(솔거 노비·외거 노비) • 지위: 재산으로 간주, 매매·상속·증여의 대상, 일천즉천, 천자수모법(어머니 소유주의 소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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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문화사
1. 조선시대 성리학의 발달
2. 실학의 발달
(1) 중농학파
• 수공업자(공장): 관영·민영 수공업에 종사, 공장세 납부 • 상인: 시전 상인·보부상 등, 상인세 납부 • 신량역천: 양인 중 천역을 담당하는 계층, 칠반천역(수군, 조례, 나장, 일수, 봉수군, 역졸, 조졸) |
|
천민 | • 노비: 매매·상속·증여의 대상, 공노비(입역 노비, 외거 노비)와 사노비(솔거 노비, 외거 노비) • 백정(도살업)·무당·창기·광대 등은 신분상 양인이었으나 직업적으로 천시됨 |
이황 | 이이 | |
기본학설 | 주리론 | 주기론 |
학파 | 영남학파 - 유성룡, 김성일, 정구 등 | 기호학파 - 조헌, 김장생 등 |
붕당 | 동인 | 서인 |
중심사상 | • 이귀기천론, 이기호발설, 이기이원론 • 근본적이며 이상주의적 성격 |
• 이통기국론, 일원론적 이기이원론, 기발이승일도설 • 통치 체제 및 수취 제도 개혁 제시(사회경장론) |
영향 | • 일본 성리학에 영향 • 위정척사 사상 → 의병 항쟁 |
북학파 실학사상에 영향 → 개화 사상 |
저서 | 『성학십도』,『주자서절요』,『전습록변』, 『퇴계전서』,『이학통론』등 |
『성학집요』,『동호문답』,『격몽요결』,『만언봉사』, 『소학집주』등 |
유형원(반계) | 활동 | • 17세기 후반: 실학 체계화 • 균전론: 관리, 선비, 농민 등 신분에 따른 토지 차등 분배 → 자영농 육성 • 양반 문벌제도, 과거제도, 노비제도의 모순 비판(노비세습제 폐지 주장), 경무법 실시 주장 |
저서 | 『반계수록』,『동국여지지』(사찬지리지) | |
이익(성호) | 활동 | • 18세기 활동: 실학 계승, 발전 • 한전론: 영업전을 제외한 토지의 매매 허용(토지 소유의 하한선 제시) • 6좀 지적: 노비제도, 과거제도, 양반 문벌제도, 사치와 미신, 승려, 게으름 • 폐전론, 붕당론(과거 시험 3년 → 5년), 성호 학파 형성(안정복, 권철신, 이백 등) |
저서 | 『성호사설』,『곽우록』등 | |
정약용(다산) | 활동 | • 18~19세기 활동, 신유박해로 18년간 유배생활, 실학의 집대성 • 여전론: 마을 단위로 토지를 공동 경작하여 차등 분배(『전론』) • 정전론: 여전제에 한계로 주장, 전국의 토지 국유화 → 전정 편성(『경세유표』) |
저서 | • 3부작:『경세유표』(중앙정치개혁),『목민심서』(수령 도리),『흠흠신서』(형옥업무 개혁) • 3논설:『탕론』(민본적 왕도 정치),『원목』(지방관이 민을 위해 존재), 『전론』 • 기타: 『마과회통』(최초 종두법 소개), 『아언각비』, 『아방강역고』(역사지리서), 기예론 강조, 이용감 설치 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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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상학파
3. 통일 신라의 불교
(1) 원효와 의상
(2) 교종과 선종
유수원(농암) | 활동 | • 우리나라와 중국의 문물 비교 → 개혁안 제시 • 상공업 진흥과 기술 혁신 강조, 사농공상의 직업적 전문화 주장 • 대상인의 사회 기여 강조, 합자를 통한 경영 규모 확대, 선대제 수공업 강조 |
저서 | 『우서』 | |
홍대용(담헌) | 활동 | • 균전론(성인 남성에게 토지 2결 지급), 기술혁신, 문벌제도 폐지 • 지전설 주장 → 중국 중심 세계관 비판, 무한 우주론 주장 • 성리학의 극복 → 부국강병의 근본, 혼천의 제작 |
저서 | 『담헌연기』,『의산문답』,『임하경륜』,『주해수용』 | |
박지원(연암) | 활동 | • 상업적 농업 강조, 한전제(「한민명전의」, 토지 소유 상한선) • 화폐 유통의 필요성, 수레와 선박의 이용 • 양반의 비생산성 비판: 허생전, 호질, 민옹전, 양반전 등 한문 소설 |
저서 | 『과농소초』,『열하일기』 | |
박제가(초정) | 활동 | • 청과 통상 강화 주장, 무역선을 파견하여 국제 무역 참여 주장 • 소비론 → 소비 권장(생산과 소비를 우물물에 비유) • 정약용과 함께 종두법 연구, 규장각 검서관 등용(서얼) |
저서 | 『북학의』,「종두방서」(『마과회통』) |
구분 | 원효[소성거사, 화정거사(고려)] | 의상[원교국사(고려)] |
출신 | 6두품 | 진골 |
불교대중화 | 아미타신앙(정토종) | 아미타신앙과 관음신앙 |
종파 | 법성종, 해동종(법성종과 화엄종, 교학 불교 융합) | 해동 화엄종 |
중심 사찰 | 분황사 | 부석사와 낙산사 |
사상 | 일심 사상, 화쟁 사상, 무애사상 | 일즉다 다즉일 |
저술 | 『화엄경소』,『대승기신론소』,『금강삼매경론』 『십문화쟁론』등 |
『화엄일승법계도』,『백화도략발원문』, 『법성계』등 |
활동 | • 일체유심조 • 고려 의천과 지눌에 영향 |
• 당 지엄에게서 수학 • 교단의 조직과 제자들의 교육 중시 • 문무왕 자문(도성 건립 만류) |
구분 | 교종 | 선종 |
특징 | 귀족적, 지배층 중심, 불교경전 강조 | 실천수행, 개인적인 정신세계 강조, 불립문자 |
영향 | 조형 예술의 발달 | 조형 미술의 쇠퇴, 승탑ㆍ탑비 유행, 지방 문화 발달에 영향 |
종파 | 열반종(보덕, 경복사), 계율종(자장, 통도사), 법성종(원효, 분황사), 화엄종(의상, 부석사), 법상종(진표, 금산사) 등 5교 |
가지산파(최초, 도의), 사굴산파(범일), 수미산파(이엄) 등 9산 선문 |
유행 | • 신라 지역: 화엄종 유행 → 왕권강화 • 백제 지역: 법상종 → 미륵신앙 강조 |
• 반신라적 성향의 호족과 6두품 세력의 지지 • 고려 왕조 개창에 영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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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려 시대 불교의 발전
5. 도교의 발달
고려 초기 | 태조 | 연등회ㆍ팔관회 강조, 사원건립(개태사, 흥국사, 법왕사 등), 승록사 설치 |
광종 | • 승과 제도, 왕사와 국사, 사원전 지급, 불교 통합 시도 • 승려: 균여(귀법사, 화엄종을 중심 교종 통합, 「보현십원가」, 성상융회), 혜거(법안종 중심 선종 통합), 제관(「천태사교의」), 의통(중국 천태종 13대 교조) |
|
성종 | 연등회와 팔관회 폐지 | |
현종 | 연등회와 팔관회 부활, 현화사 | |
고려 중기 | • 교종의 유행: 화엄종(왕실), 법상종(귀족) • 대각국사 의천(문종의 아들, 왕후) - 교종 통합(흥왕사, 화엄종 중심) → 국청사 창건, 천태종 창시(교종 중심 선종 통합) - 교관겸수, 내외겸전 제창(이론 연마와 실천 강조) - 저서:「천태사교의주」,「대각국사문집」,「석원사림」,「원종문류」,「신편제종교장총록」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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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집권기 | • 신앙결사운동: 수선사 결사(지눌), 백련사 결사(요세) • 보조국사 지눌(최충헌 때 활약) - 수선사 결사: 송광사 중심, 승려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독경과 선 수행, 노동 강조 - 조계종 창시: 선종 중심 교종 포용(선교일치 완성), 정혜쌍수, 돈오점수 제창 - 저서: 「수심결」,「권수정혜결사문」,「진심결」등 • 진각국사 혜심(최우 때 활약): 수선사 2대 교주, 지눌의 제자, 유불일치설(성리학 수용 토대),「선문염송」 • 원묘국사 요세(최충헌 때 활약): 만덕사 중심, 백련사 결사 조직, 정토종 수용, 보현도량 강조, 법화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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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간섭기 | • 라마불교 전래, 불교 타락(백련사→왕실의 원찰인 묘련사로 변질) • 보우: 원에서 임제종 도입, 교단 정비 노력(9산 통합)→실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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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 | 성리학자들이 불교 비판 |
전래 | • 특징: 노장 사상, 신선사상, 산천숭배, 불로장생, 은둔적 경향 등 • 전래: 고구려 영류왕 때 전래 • 연개소문의 지원: 불교 사찰을 도관으로 사용, 보덕의 반발(열반종) |
고구려 | 강서대묘의 사신도, 을지문덕의 5언시(「도덕경」의 내용 반영) |
백제 | 산수무늬 벽돌, 사택지적비, 금동대향로, 무령왕릉 매지권 등 |
신라 | 화랑도를 국선도ㆍ풍류도라고 함 |
통일신라 | 최치원의 4산 비문, 난랑비문, 김가기(당에서 도사 생활) 등 |
발해 | 정혜공주와 정효공주묘의 지석 |
고려 | • 특징: 도교 행사인 초제 거행, 참성단(강화도), 팔성당(인종), 교단 성립 실패, 민간 신앙으로 전개 • 도관: 복원궁(예종 때 처음 건립) • 팔관회: 명산대천에 제사, 도교+민간신앙+불교, 개경(11월)과 서경(10월), 외국 사신 초빙 |
조선 | • 마니산 참성단 초제, 원구단 초제(세조), 소격서 폐지(중종, 조광조) • 지방 선비들이 심신 연마를 위해 도교 수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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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조선 전기 과학 기술의 발달
7. 조선 후기 과학 기술의 발달
천문 | • 서운관 → 사천대(세조) • 천체 관측: 혼의ㆍ간의(세종) • 시간 측정: 자격루(자동 시보 장치, 물시계), 앙부일구(해시계) • 강우량 측정: 측우기(세종) - 세계 최초, 관상감, 8도 감영에 설치 • 토지 측량: 인지의, 규형(세조) •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태조) → 고구려 천문도 바탕 |
역법 | 칠정산(서울 기준, 세종) = 내편(원의 수시력, 명의 대통력 토대) + 외편(아라비아의 회회력) 참고 |
활자 인쇄 | • 태종: 계미자, 주자소에서 인쇄 • 세종: 갑인자, 경자자, 밀랍 대신 식자판 조립 |
제지술 | 조지소(태종), 조지서(세종) 설치 |
의학 | • 「향약제생집성방」(태조 때 편찬, 정종 때 간행),「향약집성방」 토대 • 「향약제취월령」(세종): 유효통, 국산 약초의 채취 시기 기록 • 「향약집성방」(세종): 우리 풍토에 맞는 약재와 치료법 정리 • 「의방유취」(세종): 의학 백과사전 |
병서ㆍ무기 | • 「총통등록」(세종): 화약 무기의 제작과 사용법 정리 • 「역대병요」: 중국 상고부터 조선 태조까지의 동아시아 전쟁사 • 「동국병감」(문종): 김종서,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 전쟁사 • 「병장도설」(성종): 「진법」 개정, 군사 훈련 지침서 • 무기 제조: 최해산 등용, 화포, 화차 - 신기전(세종) • 병선 제도: 거북선(태종, 최초), 비거도선(태종, 세종) |
농서 | • 「농사직설」(정초, 세종): 최초의 자주적 농서, 농부의 실제 경험 • 「양화소록」(강희안, 세종): 화초 재배법 소개 • 「사시찬요」(강희맹, 세조): 4계절 농사법과 원예 작물 기록 • 「금양잡록」(강희맹, 성종): 경기도 시흥 지방 농민의 경험담 • 「구황촬요」(명종): 흉년 구제법, 구황 방법 제시 |
서양 문물 소개 | • 중국(청) 왕래 사신들이 전래 • 곤여만국전도(선조, 이광정), 화포ㆍ천리경ㆍ자명종 등(인조, 정두원) • 외국인: 발테브레(인조, 훈련도감 소속, 서양식 대포 제조법), 하멜(효종, 「하멜 표류기」저술) |
천문 | • 지전설 주장: 김석문(최초, 「역학도해」), 홍대용(혼천의 제작, 무한우주론) • 최한기(「명남루총서」,「지구전요」) 등 |
의학 | • 「동의보감」(허준, 광해군): 동양 의학 백과사전, 세계기록유산 • 「침구경험방」(허임, 인조):침구술 집대성 • 「마과회통」(정약용, 정조): 홍역(마진) 연구, 부록 「종두방서」(박제가와 종두법 연구) • 「방약합편」(황도연ㆍ황필수, 고종): 한글로 약재 소개 • 「동의수세보원」(이제마, 고종): 사상의학 확립 |
농서 | • 「농가집성」(신속, 효종):「농사직설」,「금양잡록」,「구황촬요」등 합본, 이앙법 보급에 기여 • 「색경」(박세당, 숙종): 토질에 따른 품종 소개(상권), 양잠법 소개(하권) • 「산림경제」(홍만선, 숙종): 농촌 생활 백과사전, 원예, 특용작물, 목축, 양봉, 식품가공 등 서술 • 「해동농서」(서호수, 정조): 중국 농업 기술 수용, 우리에 맞게 개량 • 「임원경제지」(서유구, 헌종): 「산림경제」토대, 농촌 생활 백과사전 |
기타 | • 조선 후기: 김 양식 개발, 냉장선 등장 • 「자산어보」: 정약전, 흑산도 부근의 해물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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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역사서
책명 | 저자 | 연대 | |
백제 | 서기 | 고흥 | 근초고왕(375) |
신라 | 국사 | 거칠부 | 진흥왕(545) |
고구려 | 유기 100권 | 작자 미상 | 국초, 연대 미상 |
신집 5권 | 이문진 | 영양왕(600) | |
고려 | 초기 | • 자주적, 고구려 계승 •『7대실록』: 태조~목종, 현종 때 편찬 시작, 임진왜란 때 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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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중기 | • 보수적, 신라 계승 •『삼국사기』(김부식, 인종):『구삼국사』참고,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 기전체, 현존 최고(最古)사서 •『편년통록』(김관의, 의종): 태조의 6대조 찬양, 현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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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집권 기 |
•『동명왕편』(이규보):『동국이상국집』에 수록, 고구려 계승의식 •『해동고승전』(각훈): 삼국시대 이래 승려의 전기, 교종의 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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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간섭기 | •『삼국유사』(일연, 충렬왕): 불교적 신이사관, 기사본말체, 향가 14수 수록, 최초 단군설화 수록 •『제왕운기』(이승휴, 충렬왕): 우리 역사와 중국사와 대등하게 파악, 단군설화 기록, 최초로 발해의 역사를 우리 역사로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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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 • 성리학적 사관: 정통 의식과 대의명분 강조 •『본조편년강목』(민지, 충숙왕): 성리학적 입장, 최초의 강목체 •『사략』(이제현, 공민왕): 현재 사론만 전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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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
건국 초기 | •『고려국사』(정도전, 태조): 건국의 정당성, 재상 중심 •『동국사략』(권근, 태종): 『삼국사략』 •『조선왕조 실록』(태조~철종) - 편년체 사서, 실록청에서 편찬, 사고에 보관, 3년마다 포쇄 - 사초, 시정기, 『승정원일기』,『비변사등록』,『일성록』등 참고 -『국조보감』(세조~): 역대 왕의 업적, 편년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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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중엽 |
•『고려사』(김종서·정인지, 문종): 고려의 역사를 자주적으로 재정리, 기전체, 우왕과 창왕은 열전 •『고려사절요』(문종):『고려사』보완 및 추가 •『삼국사절요』(서거정ㆍ노사신, 성종): 단군 조선~삼국, 편년체 •『동국통감』(서거정, 성종): 최초의 편년체 통사, 단군 조선~고려, 외기·삼국기·신라기·고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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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 • 사림의 정치·문화 의식(존화주의 사관) 반영 •『동국사략』(박상):『동국통감』비판, 신라 통일 강조 •『기자실기』(이이): 기자 강조 •『표음주제동국사략』(유희령): 『동국통감』비판, 고구려 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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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
17세기 | • 강목체 유행, 붕당에 따라 다른 역사관 •『동사찬요』(오운, 광해군): 남인, 왜란 때 의병 참여 기록, 기전체 •『동국통감제강』(홍여하, 현종):『동국통감』을 강목체로 압축(삼국까지 정리), 기자·마한 정통론 •『휘찬여사』(홍여하, 현종): 남인, 고려사를 강목체 형식의 기전체로 정리, 기자·마한 정통론 •『여사제강』(유계, 현종): 서인, 고려사를 강목체 형식의 편년체로 기록, 북벌 강조 •『동사(東事)』(허목, 현종): 남인, 단군~삼국, 붕당 정치·북벌 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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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19세기 |
•『동사강목』(안정복, 정조): 강목체, 삼한정통론(단군-기자-마한-신라-고려), 고증사학의 토대 마련 •『열조통기』(안정복, 정조): 태조~영조, 편년체 •『발해고』(유득공, 정조): 발해사, 최초로 남북국 시대 규정, 협소사관 극복 •『연려실기술』(이긍익, 순조): 기사본말체, 조선의 정치ㆍ문화 야사 •『동사(東史)』(이종휘, 순조): 고조선~고려말, 고구려사 강조, 기전체, 만주 수복 희구→협소사관 극 복 •『해동역사』(한치윤, 순조): 중국ㆍ일본 사서 인용, 단군~조선, 기전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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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인 | •『연조귀감』(이진흥, 정조): 향리들의 역사서 •『규사』(달서정사-이진택, 철종): 서얼들의 역사서 •『이항견문록』(유재건, 철종), 『호산외기』(조희룡, 철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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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근현대사
01. 근대 사회의 전개
1. 흥선 대원군의 정치(1863~1873 집권)
(1) 대내적 개혁정치
왕권강화책 | • 통치 체제 재정비: 세도정치 타파, 비변사 폐지, 의정부와 삼군부 부활 • 법전 편찬: 『대전회통』, 『육전조례』 • 경복궁 중건: 왕실 권위 회복 ⇒ 원납전 징수, 당백전 발행(→물가 상승 초래, 경제 악화) |
민생안정책 | • 삼정의 문란 시정 - 전정: 양반 토호의 토지 겸병 금지, 은결 적발 - 군정: 호포법 실시 - 환곡: 환곡제 폐지, 사창제 실시 • 서원 철폐: 붕당의 근거지 정리, 농민 보호, 국가 재정 확충 |
한계 | 통치 체제 유지와 전제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한 체제 내에서의 개혁 |
(2) 통상수교 거부정책과 양요
병인박해 | 1866 | 프랑스와 교섭 실패, 천주교 탄압 |
제너럴셔먼호 사건 | 평양, 신미양요의 발단, 박규수의 통상 거부 | |
병인양요 | • 프랑스 로즈 제독, 강화도 침입 • 양헌수(정족산성), 한성근(문수산성) 항전 • 외규장각 문서 등 문화재 약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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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르트 도굴 사건 | 1868 | 충남 덕산, 독일 상인 오페르트의 남연군 무덤 도굴 시도, 실패 |
신미양요 | 1871 | • 미국, 로저스 제독, 콜로라도호 침입(초지진, 덕진진) • 어재연의 광성보 분전, 수자기(어재연 장군기) 약탈 |
척화비 | 신미양요 직후 전국에 각지에 건립, 통상수교 거부 의지 천명 | |
흥선대원군 하야 | 1873 | 최익현의 상소로 하야 |
2. 개항과 불평등 조약 체제
(1)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병자 수호 조약, 1876)
배경 | • 운요호 사건(1875): 일본의 영종도 점령 후 개항 요구 • 개항 필요성 주장, 박규수·오경석·유홍기 등 개화사상가 |
|
의의 |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 불평등 조약 | |
내용 | 조선은 자주국 | 청의 종주권 부인 |
항구의 개항 | • 부산(1976, 경제), 원산(1880, 군사), 인천(1883, 정치) • 조계 설정, 일본인의 통상 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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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측량권 | 주권 침해 | |
치외 법권(영사재판권) | 개항장에서 일본 영사가 일본인의 범죄 처벌 | |
부속조약 | 조·일 수호 조규 부록 | • 조선 국내에서의 일본 외교관 여행의 자유 • 개항장에서 간행이정(일본인 거류지 범위) 10리 규정 •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의 사용 허용 |
조·일 통상 장정(조·일 무역 규칙) | 일본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 무항세, 양곡의 무제한 유출 허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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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미 수호 통상 조약(1882)
배경 | • 미국의 노력, 「조선책략」의 영향(방러책,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 • 청의 알선(청은 조선이 청의 속국 명시 요구) |
의의 | 서양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 불평등 조약 |
내용 | 거중조정, 치외 법권, 최혜국 대우(최초), 관세 조항(최초) 등 |
결과 | 보빙사의 파견(1883), 미공사 파견(1887, 박정양 |
3. 정부의 개화 정책과 반발
(1) 정부의 개화 정책
개화파 형성 | • 북학파 실학사상의 발전적 계승 • 청의 양무운동, 일본의 문명 개화론의 영향 • 인물 : 박규수, 오경석(역관, 『해국도지』, 『영환지략』 도입), 유홍기(유대치, 의원)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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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사 | • 1차(1876): 김기수 → 「일동기유」 저술 • 2차(1880): 김홍집 → 황쭌쏀의 「조선책략」 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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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정책 | • 개화파 형성: 김옥균, 박영효, 김윤식, 유길준 등이 정계 진출 • 통리기무아문(1880): 개화 총괄, 12사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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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절단 파견 | 조사 시찰단(1881) | 일본, 박정양·어윤중·홍영식 등 62명 파견, 각종 산업 시설 시찰 |
영선사(1881) | 청에 김윤식 외 학생과 기술자 파견 ⇒ 1년만에 귀국(기기창 설치, 1883) | |
보빙사(1883) | 민영익, 홍영식, 유길준 등 파견, 40여 일간 순방하고 귀국 | |
군사 제도 | • 5군영 ⇒ 2영(무위영, 장어영) • 별기군(1881): 국왕의 근위병으로 특별대우, 일본군 교관이 신식 군사 훈련 실시 |
(2) 위정척사 운동
(3) 임오군란(1882)
배경 | • 개화파와 수구파의 대립, 개화 정책에 대한 불만 • 구식 군대에 대한 차별 대우-도봉소 사건(1882), 민중 경제 파탄(일본 상인 침투, 양곡 유출) |
전개 | 구식 군인 봉기 → 일본 공사관 습격 → 도시 빈민층 합세 → 민씨 정권의 고관과 왕궁 습격 → 흥선 대원군 일시 집권 → 청군의 개입으로 실패(민씨 정권의 요청), 민씨 일파 재집권 |
결과 | • 청의 내정 간섭: 청군 주둔, 고문 파견[내정– 마젠창, 외교- 묄렌도르프], 조·청 상민수륙 무역장정 체결→ 청 상인의 특권 허용, 속방 관계 규정 • 일본 - 제물포 조약 체결: 일본군 주둔 허용, 배상금, 3차 수신사 파견(박영효 일행, 태극기 사용) 조·일 수호조규 속약: 간행이정 50리 → 2년 뒤 100리 |
시기 | 주요 인물 | 주요 내용 |
1860년대 | 이항로, 기정진 | 통상 반대 운동, 척화주전론 → 대원군의 통상수교 거부 지지 |
1870년대 | 최익현 | 왜양일체론(倭洋一體論), 개항 불가론 → 개항 반대 운동 |
1880년대 | 이만손, 홍재학 | 『조선책략』 유포와 개화 정책에 반발, 영남 만인소 등 개화 반대 운동 |
1890년대 | 유인석, 이소응 | 항일 의병 운동으로 계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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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갑신정변(1884)
4. 동학농민운동(1894)
배경 | • 개화당 차관 도입 실패로 인한 온건 개화파의 정치적 탄압 • 청·프 전쟁으로 청군의 철수 • 일본의 군사적 지원 약속 |
전개 | 우정국 개국 축하연 계기로 정변 → 개화당 정부수립(14개조 정강) → 청군 개입, 3일 천하 → 주도세력 일본 망명 |
결과 | • 한성 조약(조선-일본): 일본에 배상금 지불, 공사관 신축비용 부담 • 톈진 조약(청-일본): 청일 양국군 공동 철병, 군대 파병할 시 사전 통보 • 청의 내정 간섭 심화: 조선 정부는 러시아 세력을 이용하여 청 견제 • 러시아 남하 견제, 거문도 사건(1885~1887, 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령) • 중립화론 등장(1885): 부들러(독일), 유길준 |
의의 및 한계 |
• 최초의 근대 국가 수립을 위한 정치 개혁 운동 • 외세 의존적 개혁, 민중의 지지가 부족(위로부터의 개혁) |
교조 신원 운동 | • 삼례 집회(1892): 최제우의 신원 복위, 탄압 중지, 최시형 주도 • 서울 복합 상소(1893): 교조 신원 요구 • 보은 집회(1893): 제폭구민, 척왜양창의 등 정치적 요구 등장 |
구 분 | 전 개 |
제1기 고부 민란 (1894.1) |
• 원인: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 • 고부 관아 습격: 전봉준이 사발통문을 돌리고 관아 습격 → 관리들을 징벌한 뒤 해산 • 정부는 조병갑 탄핵, 새로운 수령 임명과 안핵사 파견 |
제2기 1차 봉기 (1894.3) |
• 원인: 안핵사 이용태의 농민 탄압 • 무장 봉기: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 재봉기 • 백산 봉기: 남접 중심, 4대 강령과 호남 창의소 격문 발표 • 황토현(4.7, 감영군 격파), 황룡촌 전투(4.23, 경군 격파)에서 승리 → 전주성 점령(4.27) |
제3기 전주화약기 (1894.5) |
• 정부 요청에 따라 청군 파견(아산만 상륙 5.5) → 톈진 조약 명분, 일본군 파견(인천 상륙 5.9) • 전주 화약 체결(5.8): 외국 군대 철수와 폐정 개혁 조건 → 집강소(전라도 53개소, 농민 자치기구) 설치 • 정부: 교정청 설치하고 개혁 추진 • 일본: 경복궁 점령(6.21), 청·일 전쟁 도발(6.23), 군국기무처 설치(6.25)하고 개혁 강요 |
제4기 2차 봉기 (1894.9) |
•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다시 봉기 • 삼례 봉기(남접) → 논산 집결(남·북접 연합부대) → 공주 우금치 전투(1894.11, 정부· 일본군 공격에 패배) • 전봉준 등 동학 지도자 체포(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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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갑오개혁의 전개(1894)
구 분 | 특 징 | 내 용 |
제1차 갑오개혁 (1894.7~1894.12) |
• 1차 김홍집 내각 주도 • 군국기무처 중심 • 흥선대원군 섭정 |
• 정치: 왕실과 정부사무 분리, 6조→8아문, 개국 기원사용, 경무청 신설, 과거제 폐지 • 경제: 재정 일원화, 은본위제(신식화폐 발행장정), 도량형 통일, 조세 금납제 • 사회: 공·사 노비제 철폐, 조혼 금지, 과부 재가 허용, 고문과 연좌법 폐지, |
제2차 갑오개혁 (1894.12~1895.7) |
• 2차 김홍집 내각 수립 (박영효·김홍집 연립) • 군국기무처 폐지 • 홍범14조, 독립서고문 발표 |
• 정치: 의정부→내각, 8아문→7부, 지방관 권한 축소 (사법권, 군사권 배제), 8도→23부, 사법권 독립, 교육입국조서 반포 • 군사: 훈련대·시위대 창설, 사관 양성소 설치 등 |
배일정책 | 청·일 전쟁 일본 승리(시모노세키 조약) → 삼국 간섭(러·독·프), 일본 세력 약화 → 박영효 실각 → 친러 내각 성립(3차 김홍집 내각) → 일본 배제, 배일 정책 강화 → 을미사변 |
|
을미개혁 (1895.8~1896.2) |
• 4차 김홍집 내각(친일적) • 아관파천으로 중단 |
건양 연호 사용, 단발령 실시, 친위대·진위대 설치, 태양력 사용, 종두법 실시, 소학교 설치(소학교령), 우편 사무 실시 |
6. 독립협회의 활동(1896)
7. 대한제국(1897~1910)
창립 | • 1896년 7월 서재필과 고급 관료가 발기(정동 구락부와 건양협회 인사, 관료, 서구시민 사상가 등) • 회장-김경수, 위원장-이완용, 고문-서재필 |
활동 | • 기관지: 대조선 독립협회 회보(1896) • 독립문·독립관 건립, 구국 선언 상소(1898), 만민공동회(1898), 관민공동회-헌의 6조(1898), 이권수호 운동 • 의회 설립 시도: 의회식 중추원 관제 반포→ 보수단체 방해로 실패 |
사상 | 자주국권 사상, 자유민권 사상, 자강개혁 사상 |
해산 | 보수단체의 반발, 황국협회와 충돌을 구실로 해산 |
의의 | 민중에 바탕을 둔 자주적 근대화 운동, 민족주의 사상, 자유 민권의 민주주의 이념을 확산 |
한계 | 외세 배척의 대상이 주로 러시아, 의병 운동 배척 |
성립 | • 고종의 경운궁 환궁(1897.8), 국호 - 대한제국, 연호 - 광무, 황제 즉위식 - 원(환)구단 • 대한국국제 반포(1899): 전제 황권 강화 |
광무개혁 | • 구본신참(舊本新參) 원칙 • 정치: 원수부 설치, 시위대와 진위대 강화, 무관학교 설립, 징병제 조칙 발표, 해군 설치 • 경제: 내장원의 재정 장악, 양전·지계 사업, 금본위화폐제 시도, 상공업 진흥책, 상무사 조직 등 • 교육: 실업학교, 외국어 학교 설립, 상공학교, 의학교 설립, 잠업시험장 설립 등 • 외교: 한·청 통상조약(1899), 만국우편연합 가입(1900), 간도관리사 파견(1902), 칙령 41조 (1900, 독도 관리)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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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항일 의병 운동
구 분 | 원인 | 특 징 |
을미의병 (1895) |
을미사변, 단발령 |
• 의병장: 유인석, 이소응, 기우만 등 • 특징: 양반 유생 주도, 고종의 해산 권고 조칙으로 해산 • 남학당, 영학당, 활빈당(1900) 등 동학의 잔여 세력이 항일 운동 전개 |
을사의병 (1905) |
을사조약 | • 의병장: 최익현(전라도 태인, 대마도 순국), 민종식(충청도 홍주), 신돌석(강원도, 경상도) • 특징: 본격적인 항일 항전의 양상, 평민 의병장 등장(신돌석) |
정미의병 (1907) |
고종강제퇴위, 군대 해산 |
• 해산된 군인의 의병 합류 → 의병 전쟁의 양상 • 전개: 13도 창의군 결성(총대장-이인영, 군사장-허위) → 서울 진공 작전 (1908.1) → 실패 • 외교 활동: 각 공사관에 의병을 교전단체로 인정해 줄 것 요구 • 이후 호남지방에서 활발하게 의병 투쟁 전개 • 국내 진공 작전: 홍범도, 이범윤 등, 간도·연해주에서 국내 진공 작전 계획 • 남한 대토벌 작전(1909)으로 국내 의병 탄압 |
9. 애국 계몽 운동 - 애국계몽 단체의 활동
구 분 | 활 동 | |
보안회(1904) | • 송수만, 원세정 등 •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 농광회사 설립 |
|
헌정연구회(1905) | • 이준, 양한묵, 윤효정 등 독립협회 인사 중심 • 입헌군주제, 일진회의 반민족 행위 규탄 → 통감부에 의해 강제 해산 |
|
대한자강회(1906) | • 전국 25개 지회 설립과 대한자강회 월보 간행 • 고종 강제 퇴위 반대와 정미7조약 반대 투쟁 전개 → 통감부에 의해 강제 해산 |
|
대한협회(1907) | 오세창, 권동진 등, 대한자강회 계승, 친일적 변화 | |
신민회(1907) | 특징 | 비밀결사 조직, 공화정체 목표, 안창호·양기탁·신채호·이동녕 등 |
실력양성운동 | • 교육: 대성학교(평양, 안창호), 오산학교(정주, 이승훈) 설립 • 산업: 태극서관(평양, 대구), 자기회사(평양) 운영 • 문화: 대한매일신보 발행, 조선 광문회(박은식, 최남선) 지원 등 |
|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 |
• 남만주: 삼원보,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 설립 • 북만주: 한흥동에 독립군 기지 건설 |
|
해산 | 안악사건 → 105인 사건(1911,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 사건) |
10. 경제적 구국 운동
방곡령(1889) | 함경도(1889), 황해도(1890) 방곡령 선포 → 일본의 압력으로 철회, 배상금 지배 |
상권 수호 운동(1898) | 시전상인 - 황국 중앙 총상회(1898) 조직, 외국상점 퇴거 요구, 독립협회와 함께 활동 |
이권 수호 운동(1898) | • 독립협회 주도(만민공동회), 미국과 일본 등에는 우호적 • 러시아 절영도 조차 요구 저지, 한러은행 폐쇄, 프랑스·독일의 광산 채굴권 요구 저지, 러시아의 목포·증남포 부근 도서 매도 요구 저지 등 |
보안회(1904) | • 황무지 개간권 요구 철회, 민간과 관리들은 농광회사 설립 |
국채보상운동(1907) | • 배경: 일본의 차관 제공으로 정부 재정이 일본에 예속(국채 1,300만원) • 경과: 대구에서 시작(서상돈, 김광제 등), 국채보상기성회 조직(서울), 언론 단체 참여 • 실패: 통감부의 방해로 실패(1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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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근대 시설
분야 | 내 용 |
통신 | • 전신: 일본~부산(1884, 일본), 서울~인천과 서울~의주(1885, 청), 전보 총국(전신 업무 관리) • 전화: 경운궁(1898) → 서울 민가에 가설(1902) • 우편: 우정국 설치(1884), 갑신정변 때 폐지 → 을미개혁 때 재개 → 만국우편연합에 가입(1900) |
교통 | • 전차(1899):한성 전기 회사(1898)가 서대문~청량리에 가설 • 철도:경인선(1899), 경부선(1905)·경의선(1906), 호남선(1914), 경원선(1914) |
의료 | • 광혜원(1885): 알렌 주도, 제중원으로 개칭) • 광제원(1899): 정부가 설립 ⇨ 대한의원(1907): 광제원의 후신, 의료 요원 양성 • 세브란스 병원(1904) 설립: 제중원 인수 • 자혜의원(1909): 도립병원 |
건축 | 독립문(1896), 명동성당(1898), 덕수궁 석조전(1910), 원각사(1908) |
기타 | 박문국(1883, 한성순보 발행), 기기창(1883, 무기 공장), 전환국(1883, 당오전 발행) 등 |
02. 일제 강점기
1. 일제의 식민 통치
(1) 국권 피탈 과정
조약 | 내 용 |
한·일 의정서(1904.2) | • 배경: 러·일 전쟁 직전 고종의 국외 중립 선언 무시, 일본의 체결 강요 • 군사기지 사용, 충고권(내정 간섭), 제3국과 조약 무효와 체결 금지 등 |
제1차 한·일협약 (1904.8) |
• 고문 정치: 재정 고문에 메가타, 외교 고문에 스티븐스 파견 • 불법적 고문 파견: 군부, 내부, 학부에 고문 파견 |
을사늑약(1905.11) | • 제2차 한·일 협약, 덕수궁 중면전에서 체결 • 통감 정치(초대 통감-이토 히로부미), 외교권 박탈 |
한·일 신협약(1907.7) | 차관 정치: 통감이 추천하는 일본인을 한국 관리로 임명 |
군대해산(1907.8) | 시위대 대대장 박승환의 자결 ⇒ 시가전, 해산군인은 의병으로 합류 |
기유각서(1909.7) | 사법권 박탈, 감옥 사무 박탈 |
경찰권 박탈(1910.6) | 경무청 폐지, 헌병 경찰제 |
한ㆍ일 병합 약(1910.8) | 주권 박탈, 총독 정치 시작 |
(2) 민족의 수난
① 1910년대 - 무단통치
조선 총독 | 일본군 대장 출신, 정치·경제·군사 등 막대한 권한, 조선 총독부 청사(1926년 완공) |
헌병 경찰 통치 | • 헌병이 일반 경찰업무 담당 • 역할: 독립운동가 색출, 첩보 수집, 일본어 보급, 세금 징수, 민사소송 조정 등 |
민족 탄압 | • 범죄 즉결례(1910), 조선 태형령(1912), 경찰범 처벌 규칙(1912) 등 • 신민회 해산(105인 사건), 기본권 박탈(언론·출판·집회·결사 ×), 교원은 제복에 착검 |
교육 탄압 | 사립 학교 규칙(1911), 제1차 조선교육령(1911), 서당 규칙(1918)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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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1920년대 – 문화통치(3·1 운동 계기)
내용 | 본질(허위성) | |
총독 | 문관 총독 임명 가능 | 문관 총독 임명 × |
경찰 제도 | 보통 경찰로 전환 | 경찰 인원·장비 증가, 고등 경찰체, 치안유지법 제정(1925) |
언론 | 한글 신문 발행(조선일보·동아일보) | 사전 검열, 기사 삭제, 정간 |
교육 | • 2차 조선 교육령(1922) • 교육 기회 확대, 대학교육 허용 |
• 초등·기술 교육에 치중 • 대학 × → 민립대학 설립운동 방해, 경성제국대학 설립(1924) |
참정권 | 도 평의회, 부·면 협의회 등 | 친일파 참여 |
③ 1930년대 – 민족 말살 통치(만주사변 계기)
배경 | 경제공황(1929) 이후 만주사변(1931)과 중·일 전쟁(1937), 태평양 전쟁(1941) |
황국신민화 정책 | • 신사참배 강요(1936), 일선동조론, 황국신민 서사 암송(1938) • 우리말과 역사 교육 금지, 창씨개명(1939), 궁성요배 등 |
민족 탄압 | •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1936) →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1941) • 탄압: 일장기 말소 사건(1936), 동아일보·조선일보 폐간(1940), 조선어 학회 사건(1942) |
④ 경제 수탈
1910년대 | 토지 조사 사업 | • 토지 조사령(1912), 신고주의 원칙(기한부 신고제) • 결과: 소작농 증가, 지주의 소유권 인정, 소작농의 경작권·도지권 부정 총독부 지세 수입 증가, 일본인 지주 이민 증가, 농민 몰락 |
산업 침탈 | 회사령(1910, 허가제), 어업령(1911), 광업령(1915), 소금·담배·인삼의 전매제 | |
1920년대 | 산미 증식 계획 | • 배경: 일본 공업화에 따른 식량 부족 해결 • 결과: 증산 목표 달성 실패, 수탈량은 계획대로 수탈 → 쌀값 폭등, 만주에서 잡곡 수입 |
산업 침탈 | 회사령 폐지(1920), 관세 철폐(1923), 신은행령(1927) 등 | |
1930년대 | 병참기지화 | • 전쟁 준비, 북부 지방 중심으로 중화학 공업 육성, 광산 개발 • 남면북양 정책, 농촌 진흥 운동(1932~1940) |
인적·물적 수탈 | • 중·일 전쟁 이후 국가 총동원령 실시(1938) 전쟁 물자 동원 • 산미 증식 계획 재개(1940), 총동원 물자 사용 수용령(1939)-공출 •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연맹(1938): 10호 애국반 • 지원병제(1938), 국민징용령(1939), 학도지원병제(1943), 징병제(1943), 여자정신대근무령(1944) |
2.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 3·1 운동 이전 민족 운동(1910년대) - 국내 비밀 결사
독립 의군부(1912) | • 고종의 밀명을 받아 임병찬 조직, 의병 조직, 복벽주의 목표 • 활동: 국권반환 요구서, 전국의 의병 투쟁 계획 |
대한 광복회(1915) | • 박상진·김좌진이 조직, 군대 조직, 공화정체 주장 • 활동: 친일파 처단, 군자금 모금(광산, 우편차 습격) |
기타 | 조선 국권 회복단(1915), 송죽회(1913), 기성단(1914), 조선 산직 장려계(1915), 자립단(1915)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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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1 운동(1919)의 전개
배경 | • 민족 자결주의: 파리 강화 회의에서 제창, 패전국 식민지에 적용 • 대동단결선언(1917):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등 14명 발표, 공화주의 임시정부 수립 주장 • 대한(무오)독립선언(1918): 박은식, 신채호, 이승만 등 39인 발표, 무장 투쟁 주장 • 신한청년당에서 김규식을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 • 고종의 서거 • 2·8 독립 선언(1919): 일본, 조선청년독립단, 이광수 작성 |
준비 | • 학생과 종교계 인사들이 고종의 인산일에 만세 시위 준비 • 기미 독립 선언서 - 최남선, 공약 삼장 - 한용운 |
전개 | • 1단계(점화기): 시민과 학생들의 독립선언서 배포 - 탑골 공원, 민족 대표 - 태화관 • 2단계(도시 확산): 전국 도시로 확산(학생 주도), 상인들의 철시 운동, 노동자층 참여 • 3단계(농촌 확산): 농민 주도, 무력 저항 • 해외 확산: 만주, 연해주, 필라델피아 등 |
탄압 | 일제의 무력 탄압: 화성 제암리 학살 사건, 유관순의 순국 |
결과 | • 일본의 통치 방식의 변화: 무단통치 → 문화통치 • 독립운동의 변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무장투쟁의 활성화 • 해외 영향: 약소민족의 민족운동에 영향, 중국의 5·4 운동, 인도의 민족 운동에 영향 |
(3)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① 수립
여러 임시정부 | 대한 국민 의회(연해주,3.17), 한성 정부(국내), 대한민국 임시정부(상하이, 4.11) 등 |
통합 |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1919.9) |
의의 | 삼권분립[국무원(행정), 임시 의정원(입법), 법원(사법)]에 입각한 최초의 민주 공화제 |
조직 | 대통령 - 이승만, 국무총리 - 이동휘, 내무총장 - 안창호, 경무국장 - 김구 |
② 임시 정부의 초기 활동
연통제 | 국내 비밀 행정 조직, 군자금 조달, 정보 보고 등 | 1921년 발각 |
교통국 | 통신 기관, 정보 수집·분석·연락 업무 등, 만주 단동 교통국 활동 활발 | |
외교 | •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 파견(김규식) → 독립청원서 제출 • 위원부 설치: 구미위원부(워싱턴, 이승만), 파리위원부(김규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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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금 | 애국 공채 발행, 국민 의연금 모집 → 이륭양행(만주), 백산상회(부산) 등을 통해 전달 | |
군사 | 육군 무관학교(1929, 상해) 설립, 만주 직할 부대: 광복군 사령부, 육군 주만 참의부 결성 | |
문화 | 사료 편찬소 - 한·일 관계 사료집 간행, 독립신문 간행(기관지) |
③ 국민 대표 회의(1923)의 소집과 결렬
계기 | 임시정부의 침체, 독립운동의 노선 통일과 독립운동의 방향 전환 모색 |
분열 | • 창조파: 새정부 수립, 신채호·박용만 등 • 개조파: 임시정부 개편, 안창호·여운형 등 ⇒ 회의 결렬 후 개조파와 창조파 이탈 |
정비 | 이승만의 위임통치 청원서(1919) → 탄핵(1925), 2대 대통령 박은식 추대(개헌 추진) |
이후 활동 | • 한인 애국단 조직(1931): 이봉창 의거(1932) → 상하이 사변 → 윤봉길 의거(1932.4) • 이동: 상하이 사변 이후 여러 차례 이동 → 한국국민당 조직(1935) → 충칭에 정착(1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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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임시정부 개헌
제1차 개헌(1919) | 대통령 지도제(대통령-이승만, 국무총리-이동휘) |
제2차 개헌(1925) |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 지도제(국무령-김구), 사법권 조항 폐지 |
제3차 개헌(1927) | 국무 위원 중심 집단 지도 체제(국무위원-김구, 이동녕 등 10여 인) |
제4차 개헌(1940) | 주석 중심제로 강력한 지도력 발휘(주석-김구) |
제5차 개헌(1944) | 주석·부주석 중심제(주석-김구, 부주석-김규식) |
⑤ 충칭 임시정부
한국독립당(1940) | 임시정부의 여당 역할 |
한국 광복군(1940) | 충칭에서 조직, 중국 정부의 지원, 총사령관-지청천, 참모장(이범석) |
건국 강령 발표(1941) | 조소앙의 삼균주의(정치·경제·교육의 균등) 바탕 |
3. 무장 독립 전쟁의 전개
(1) 1920년대 독립 전쟁
(2) 1930년대 독립 전쟁
① 한·중 연합 작전의 전개
배경 | 만주사변(1931)이후 중국인의 반일감정 고조 |
한국독립군(지청천)+ 중국 호로군 | 쌍성보, 사도하자, 대전자령, 동경성, 경박호 전투 |
조선혁명군(양세봉)+ 중국 의용군 | 영릉가, 흥경성 전투 → 양세봉 사망 후 세력 약화 |
변화 | 1930년대 후반 중국 본토로 이동하여 일부는 한국광복군에 합류 |
봉오동 전투(1920.6) | • 국내 진입 작전: 삼둔자 전투 등 • 일본군이 봉오동으로 독립군 추격 → 대한독립군(홍범도), 국무도독부군(최진동), 국민회군(안무) 등 격퇴 |
청산리 대첩(1920.10) | • 훈춘 사건(1920.9): 일본이 만주 마적단 매수 → 일본군의 만주 출병 • 북로군정서(김좌진), 대한독립군(홍범도), 국민회군(안무) 등 연합부대의 격파 • 백운평·어랑촌·천수평·고동하 등에서 6일 동안 10여 차례 치열한 전투 • 일제 강점기 독립군 전투 중 최대 전과 |
간도참변(1920.10) | 독립군 근거지 소탕 명분으로 양민 학살과 방화 자행 |
자유시 참변(1921.6) | • 대한독립군단 결성(1920.12): 북만주 밀산부 → 소련령 자유시로 이동 • 소련 적색군이 무장해제를 거부하는 독립군 공격, 독립군 내부의 지휘권 분쟁 → 다수의 독립군 희생 |
3부 결성(1923~1925) | • 군정기구 + 민정기구, 자치 정부 역할 • 참의부(1923, 임시 정부 직할, 압록강 건너편), 정의부(1924, 남만주 길림), 신민부(1925, 북만주)가 결성 |
미쓰야 협정(1925) | 미쓰야(경무총감)가 만주 군벌과 체결한 독립군 공동 토벌 협정 |
북경 촉성회(1926) | 민족 유일당 운동 전개 |
3부 통합(1920년대말) | • 북만주: 혁신의회(1928) - 한국독립당 / 한국독립군(지청천) • 남만주: 국민부(1929) - 조선혁명당 / 조선혁명군(양세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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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중국 관내의 민족 연합 전선
(3) 1940년대 독립 전쟁
임시정부 - 한국 광복군(1940) |
• 충칭에서 조직, 중국 정부의 지원, 총사령관 - 지청천, 참모장 - 이범석 • 태평양 전쟁(1941) 발발: 대일·대독 선전 포고,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연합(1943) • 조선 의용대의 합류(1942) • 국내 진공 작전(1945.9 계획): 국내정진군 편성, 미국 OSS의 지원, 일본의 패망 으로 실패 |
조선독립동맹(1942) | • 화북 조선청년연합회와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중심 •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조선의용군으로 개편(1942) → 팔로군과 항일전 전개(호가장 전투, 반소탕전 승리) |
(4) 의열 투쟁의 전개
의열단 (1919) |
조직 | • 만주 길림, 김원봉 중심, 신흥무관학교 출신 다수 |
목표 | • 공약 10조, 5파괴, 7가살 • 민중 직접 혁명 추구: 조선혁명선언(1923, 신채호, 의열단 강령) |
|
활동 | ||
변화 | 중국 황포군관학교 입교(1926), 조선혁명간부학교 설립(1932) → 조선의용대 조직 |
박재혁(1920) 부산 경찰서 투탄 김상옥(1923) 종로 경찰서 투탄
최수봉(1920) 밀양 경찰서 투탄 김지섭(1924) 일본 왕궁 이중교에 투탄
김익상(1921) 조선 총독부 투탄 나석주(1926) 동척·조선식산은행에 투탄
김익상, 오성륜,
이종암(1922)
상해 황포탄,
다나카 암살 시도
한인애국단 (1931) |
조직 | 상하이에서 김구 |
활동 | • 이봉창 의거(1932): 도쿄에서 일본 국왕에게 폭탄 투척 → 상하이 사변 • 윤봉길 의거(1932): 상하이 훙커우 공원 폭탄 투척 → 중국 정부 지원 계기, 한국광복군 창설 계기 |
|
기타 | 강우규(1919, 사이토 총독 암살 시도), 조명하(1928, 일왕의 장인 암살) 등 |
민족혁명당(1935) | • 조직: 난징, 의열단·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 등 5개 단체 참여 • 성격: 통일전선 정당으로 결성 → 김원봉의 의열단 중심 → 민족주의 계열 이탈 → 조선민족혁명당(1937) 개편 → 조선민족전선연맹(1937) 조직 |
조선의용대(1938) | • 조직: 조선민족혁명당·조선민족전선연맹의 군사 조직 • 의의: 중국 본토 최초의 한국인 독립군 부대 • 중국 국민당과 함께 항일 투쟁 전개 • 분열 - 화북지대(옌안)로 이동 :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결성, 조선의용군 개칭(1942) - 충칭(임시정부)으로 이동 : 한국광복군에 합류(1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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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민족 유일당 운동
(1) 학생 중심의 민족 운동
① 6·10만세 운동(1926)
② 광주 학생 운동(1929)
(2) 신간회(1927~1931)
03. 현대
1.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1945.12) |
• 미·영·소 대표 참여 • 임시정부 수립, 미·소 공동 위원회 설치, 미·영·중·소의 최고 5년간 신탁 통치 등 합의 등 • 반응: 우익 - 신탁 통치 반대(반탁) / 좌익 - 반탁 → 찬탁 |
1차 미·소 공동 위원회 (1946.3) |
• 소련: 찬탁 세력만 참여 주장 • 미국: 모든 단체 참여 주장 → 결렬 |
이승만의 정읍 발언(1946.6) |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주장 |
좌우합작 운동(1946.7) | • 여운형(중도 좌)과 김규식(중도 우) 주도, 좌우합작 7원칙(1946.10) 발표 • 미군정 지지: 남조선 과도 입법의원(1946.12), 남조선 과도 정부(1947.6) |
2차 미·소 공동 위원회 (1947.5) |
• 트루먼 독트린(1947.3)이후 냉전강화로 결렬 → 한국문제 유엔 상정(1947.9) • 여운형 암살(1947.7) |
배경 | 순종의 인산일 계기 | |
전개 | 준비 | • 사회주의계: 권오설 주도, 민족주의 계열 참여 → 사전 발각 • 학생: 조선 학생 과학 연구회, 연희전문, 중앙 고보 등 |
주도 | 순종 인산일에 학생들이 격문 배포 → 시민 합류 | |
결과 및 의의 | • 시위가 각급 학교로 확대, 시위 이후 학생 운동 조직화 • 민족 유일당 운동에 영향 → 신간회 창립 계기 |
배경 | 국외 | 중국의 제1차 국공 합작(1924), 독립유일당 북경촉성회(1926), 만주의 3부통합(1929~1930) |
국내 | 자치 운동의 대두, 6·10 만세 운동, 조선 민흥회(1926.7), 정우회 선언(1926.10) | |
조직 | •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 + 사회주의 계열 통합, 개인본위의 조직 • 회장 - 이상재, 부회장 - 홍명희, 전국 140여 개의 지부, 4만여 명의 회원 |
|
강령 | 민족의 단결, 정치적·경제적 각성, 기회주의 배격 | |
활동 | • 전국 순회 강연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 노동 쟁의, 소작 쟁의, 동맹 휴학 같은 대중 운동 지원 • 광주 학생 항일 운동 지원 → 민중대회 개최 시도,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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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 • 민족주의 계열 내에 타협적 노선 등장, 사회주의계의 신간회 해소 주장 • 일제의 철저한 탄압, 계급 투쟁을 강조하는 코민테른의 지시 등 |
배경 | 열차에서 한국 여학생 희롱 사건 → 한·일 학생 간 충돌 → 일본 경찰의 편파 수사 |
전개 | • 광주의 성진회·독서회 중심으로 학생들의 봉기: 시험 거부, 가두 시위, 동맹 휴학 등 → 전국 확산, 5개월간 지속, 만주와 일본 등 확대 • 신간회: 진상 조사단 파견, 민중대회 계획(시행×) |
결과 및 의의 | • 3·1 운동 이후 최대 민족 운동 • 학생의 날 제정(11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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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총회 결정(1947.11) | 인구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를 통한 통일방안 결정 |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 파견 (1948.1) |
8개국 대표로 구성, 총선거 감시 목적 → 남한 입국, 북한 입국 거부 |
유엔 소총회(1948.2) | • 가능한 지역에서 총선거 결정(5·10 총선거 결정) • 김구: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발표하여 반발 |
남북 협상(1948.4) | • 김구·김규식이 김일성·김두봉에게 제안 • 개최: 평양, 남북한 지도자 연석회의 • 합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미·소 철수 결의문 발표 → 의견차로 성과 × |
제주도 4·3 사건(1948.4) | • 좌익 세력의 단독정부 반대, 미군 철수 주장하며 무장 봉기 • 진압 과정에서 수만 명의 제주도민 희생(1954년 9월까지 지속) • 여수⋅순천 10⋅19 사건(1948.10): 4ㆍ3 사건 진압 위해 여수 군부대 출동 명령 → 군부대 내의 좌익 세력 봉기 → 반란군 일부는 지리산에서 빨치산 투쟁 |
5·10 총선거(1948.5) | • 만 21세 이상 참여, 제주도에서는 2개 선거구에서 선거 미실시(200석 중 198석) • 김구의 한국독립당, 김규식의 중도파, 조선공산당은 선거 불참 • 제헌국회 의원 선출(임기 2년) → 헌법 제정·공포 |
헌법·제정 공포(1948.7.17.) | 대통령 중심제(국회 무기명 선출), 임기 4년 중임, 단원제 국회, 내각 책임자 요소 |
2. 민주주의 시련과 발전
1공화국 | • 자유당 조직(1951.12): 반공 구실로 반대파 탄압, 새 여당 조직 → 독재 기반 구축 • 발췌 개헌(1952): 직선제 개헌, 양원제(구성×) → 이승만 제2대 대통령 당선 • 사사오입 개헌(1954): 초대 대통령의 중임제한 폐지 • 3대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민주당 장면 당선(1956) • 탄압: 진보당 사건(1958, 조봉암 사형), 2·4 정치 파동(보안법 파동, 1958), 경향신문 폐간 (1959) |
4·19 혁명(1960) | • 배경: 이승만 정부의 장기독재와 부정부패, 자유당의 3·15 부정 선거 • 과정: 2·28 대구 학생 의거 → 3·15 부정 선거 → 부정 선거 항의 시위(마산), 김주열 군 시체 발 견(4.11) → 시위 확산 → 4·18 고대생 시위 → 4·19 혁명 → 계엄령 선포, 경찰의 발포로 사 상자 발생 → 교수단 성명서 발표(4.25) → 이승만 하야(4.26) • 결과: 허정 과도정부 수립 → 총선거 민주당 압승 → 3차 개헌(내각 책임제와 양원제 국회) |
2공화국 | • 장면 내각: 민주당 내각 성립, 대통령 윤보선, 국무총리 장면 • 활동: 국토개발사업 추진, 경제개발계획 수립, 4차 개헌(부정선거 관련자 소급입법 근거 마련), 통일 논의 활성화(학생과 혁신계열, 중립화 통일화) • 한계: 민주당 내의 세력 다툼, 부정 선거 관련자·부정 축재자에 대한 처벌에 소극적, 계속된 경기 침체 등 |
5·16 군사 정변 (1961) |
• 배경: 장면 정부의 무능과 사회 혼란을 명분으로 군사 정변을 일으킴 • 혁명 공약 발표: 반공 국시, 자주 경제 재건, 민정 이양 • 국가재건 최고회의 구성, 군정 실시, 중앙정보부 설치, 민주공화당 창당,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 획 시작(1962) • 민정 이양: 5차 개헌(1962.12): 대통령 중심제, 직선제, 국회 단원제 • 5대 대통령(1963): 박정희 당선으로 3공화국 수립 |
3공화국 | • 조국 근대화와 국가 안보 강화 • 한·일 협정(1965):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 김종필·오히라 메모(1962)↔ 6·3 시위(1964) • 베트남 파병(1965~1973): 베트남 특수로 경제 성장 자본 마련, 브라운 각서(1966) • 3선 개헌(1969): 박정희의 장기 집권의 기반 → 제7대 대통령 선거(1971)에서 대통령 당선 • 7·4 남북공동성명(1972), 유신 헌법 제정(197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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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공화국 | • 닉슨 독트린으로 냉전 체제 완화, 세계 경제 불황으로 박정희 정부의 위기의식 고조 • 성립 : 비상계엄 선포, 국회 해산, 정치 활동 금지 → 10월 유신 선포 유신 헌법 제정 • 유신 헌법(7차 개헌): 대통령 간선제(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 임기 6년, 중임제한× 긴급 조치권, 국회의원 1/3 임명권(유신 정우회), 국회 해산권, 법관 인사권 등 부여 • 유신 붕괴: YH 무역 사건 → 김영삼 국회제명 → 부마항쟁 → 10·26 사태(1979) → 12·12 사태(신 군부 등장) → 서울의 봄(1980.5) → 계엄령 선포 → 5·18 민주화 운동(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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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1980) |
• 학생·시민들의 민주화 운동: 계엄 철폐, 신군부 퇴진, 유신 철폐 • 계엄군의 발포 → 시민군 조직 → 계엄군의 광주 봉쇄 → 무력 진압(1980.5.27.) • 신군부의 국가 보위 비상대책위원회 조직(1980.5.31.) • 최규하 대통령(10대) → 전두환 대통령 선출(11대, 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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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화국 | • 신군부 권력 장악: 8차 개헌(대통령 선거인단 간선제, 7년 단임제) → 전두환 대통령 당선(12대) • 강압 정치 : 민주화 운동 탄압, 인권 유린, 삼청 교육대 운영, 언론 통폐합 • 유화 정책 : 민주화 인사 복권, 야간 통행금지 해제, 중고생 교복과 두발 자율화, 해외 여행 자율화 등 • 24회 서울 올림픽 유치, 3저 호황으로 2차 석유 파동 극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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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항쟁 (1987) |
• 배경: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1), 4·13 호헌 조치 • 6월 민주항쟁: 호헌 철폐,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6·10 국민대회 • 시위 도중 이한열 사망 → 전국으로 시위 확산 • 6·29 민주화 선언: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과 구속인사 석방, 정치활동 규제 철폐 약속 • 9차 개헌: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현행 헌법), 헌법재판소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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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공화국 | 노태우 정부 | • 서울 올림픽 개최(1988) → 북방 외교, 소련(1990), 중국(1992)과 수교 • 3당 합당(1990),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1991.9), 남북 기본합의서 (1991.12) 체결 |
김영삼 정부 | 지방 자치제 전면실시, 금융 실명제(1993), OECD 가입(1996), 외환위기(1997) | |
김대중 정부 |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 남북 정상 회담(2000), 6·15 남북 공동 성명 | |
노무현 정부 | 2차 남북 정상 회담, 10․4 선언(20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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