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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및 공무원 시험 대비 흐름이 잡히는 한국사 핵심 요약 정리 3. 조선시대 1

공갱! 2021. 9. 2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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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시대 1


조선 15C 인물, 산수화유행
16C~17C 사군자, 초상화 유행, 서정적 산수화풍
18C~19C 진경산수화, 서양화법도입, 문인화 유행, 실학적 화풍발달
중국에서 전래되어 우리나라에서 더욱 발전된 문화➜나전칠기, 대성악
원➜고려 (월화수목 아 임송경 농성)
화약, 수시력, 목화, 아라비아 문화, 임제종, 송설체, 경천사지 10층석탑, 농상집요, 성리학
※고려시대의 건축, 예술 중 신라시대의 전형적 양식에서 그대로 계승한 것은~ 범종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구별>

삼국사기~김부식, 고려 인종의 명을 받고서, 기전체(총50권), 현존 최고의 사서, 삼국시대를 기록한 유일한 정서, 신라에 편중, 중국중심적, 구삼국사등을 참고, 북진정책을 좌절시킨 사관, 귀족사회 전성기에 저술, 사론 중심의 주관서술,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사
삼국유사~일연, 고려 충렬왕때 야사체(총5권), 기사본말체, 민간설화, 단국신화, 향가14수, 불교입장, 민족의식 소생·자주사관, 원지배하에 저술, 고증 중심의 객관서술, 원시시대~고려시대

기전체(본기·세가·지·열전등으로 구분)~사마천의 사기, 삼국사기, 고려사, 해동역사
(본기~왕의 업적, 세가~중요 가계, 지~모든제도, 열전~신하의 전기)
편년체(년·월·일 등의 사실을 편술)~사마광의 자치통감, 삼국사 절요, 고려사 절요, 동국통감, 조선왕조 실록 실록·절요·통감은 모두 편년체
기사본말체(사건마다 발단과 결과를 실증사학적으로 기술)~통감기사본말, 삼국유사, 연려실기술
강목체(대의·세목으로 나누어 기술)~주자의 자치통감강목, 강목집요, 고려말 성리학 전래와 함께 유행
※제왕운기~이승휴가 중국과 한국의 역대를 서사시, 단군의 역사와 발해의 역사가 있음
※황룡사는 진흥왕때 세워졌으나 황룡사 9층탑은 선덕여왕(7C)때 건립
고로 황룡사 9층탑은 통일전에 세워짐.

<조선시대의 군역제도>

통일신라~중앙군:9서당, 지방군:10정
고려~중앙군:2군 6위, 지방군:주현군
조선초~중앙군:5위, 지방군:영진군
조선후기~중앙군:5군영, 지방군:속오군
개화기~중앙군:2영, 지방군:속오군

5위는 녹봉과 품계를 같이 받음
호적을 토대로 군역대상자를 3년마다 조사하고 군역은 6년 마다 작성

양인개병제(15C초)➜대립제(15C말)➜방군수포제(18C)➜군적수포제➜균역법➜동포제
중앙군의 설립 순서~훈련도감(삼수미세)➜총융청(자비부담)➜수어청(자비부담)➜어영청➜ 금위영
체제~진관체제(세조, 군현단위 소규모 체제)➜제승방략체제(을묘왜변후, 도단위, 1인지휘, 총동원체제)➜속오군체제(임란후, 군현단위, 진관복구)➜영장체제(정묘호란후, 직업군인이 방위담당)
15C 의무병(부병제)에서 16C 모병제적(3수병)성격이 나타남
※도시~매년 훈련도감과 병영에서 봄가을로 실시하는 무사시험

<농서의 변화>

고려말~이암의 농상집요, 독자성이 없음, 원의 것, 우경에 의한 심경법, 윤작법, 시비법발달, 일역전(1년휴한), 재역전(2년휴한) 사라짐
조선초~정초의 농사직설, 최초, 강희맹의 금양잡록, 강희맹의 시시찬요, 농종법(밭), 직파법(논), 이앙법등장
조선중기~신속의 농가집성, 박세당의 색경, 이앙법 보급
조선후기~18C 홍만선의 산림경제, 박지원의 과농소초, 경종법등장, 이앙법 확대
19C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정병하의 농정촬요, 광작유행, 농민계층분화

<조선시대 농업제도>

현종때 제언사 설치, 정조때 제언절목 반포, 정조때 송금절록 반포하여 산림녹화 강화
담배, 고추, 호박은 일본에서 전래
지대의 변화~ 타조법➜도조법➜도전법
도지권은 매매가능

<고려와 조선의 화폐>

화폐는 널리 쓰이지 못함, 미나 포가 널리 쓰임
조선후기 숙종때 상평통보의 3차발행때 널리 쓰임
숙종때 의천의 건의로 주전도감 설치
화폐의 최초 발행시기~ 건원중보-성종, 은병-숙종, 저화-공양왕, 상평통보-인조

<고려와 조선의 신분제도>

고려의 노비는 호적에 등록하여 관리했으나 양수척, 진척, 재인, 기생은 국소수라 국역부담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호적에 등록하지도 않았다.
∙노비는 원칙적으로 관직에 나갈 수 없음
∙국가에 대해 원칙적으로 국역 부담 없음
∙형부의 도관에서 노비 담당

조선의 노비~공노비는 순조때 해방, 사노비는 갑오개혁때 해방 결국 노비는 19세기에 모두 해방
조선의 노비는 장예원에서 노비 담당, 국초 사노비의 수가 궁노비 보다 많음, 모든 공노비는 60세가 되면 역이 면제
★조선 중인의 문학작품~ 최성환의 고문비략, 이진택의 규사(서얼의 역사), 유재건의 이향견문록(서리의 저서), 이진흥의 연조귀감(향리의 역사), 조희룡의 호산외기(중인의 역사), 이경민의 희조일사(서민의 저서)

<신진사대부와 무인세력의 성장>

무인세력의 등장~홍산싸움(1376) 최영 외국침입격퇴, 진포싸움(1380) 최무선·나세 화통도감설치, 화포를 사용하여 승리, 황산싸움(1380) 이성계 왜구토벌, 관음포싸움(1383) 정지 왜구토벌, 대마도 정벌(1389) 박위 쓰시마섬 정벌
※이종무도 대마도 정벌을 하지만 고려 시대가 아님.
위화도 회군(1388)➜과전법 공포(1391)➜조선건국(1392)➜조선 국호 사용(1394)

<태조 이성계의 치적>

역대 중국왕조에서 이웃나라 왕이 즉위하면 이를 승인하는 절차인 <금인·고명문제>로 정도전을 불벌을 계획하기도 함
3대정책(사대교린, 억불숭유, 농본민생), 국호제정, 국도의 천도, 재상주도의 관료제 확립 (도평의사사중심), 의흥삼군부, 정도전의 보필(경제문감, 고려국사, 불씨잡변, 조선경국전, 심기이편)-경고불조심 , 고려의 구질서 유지

<태종의 치적>

고명, 금인의 문제가 해결됨, 1차왕자의 난(정종즉위), 2차왕자의 난(태종즉위), 왕권강화(사병혁파, 6조직계제실시), 양전사업, 공도정책(섬주민을 본토로 옮겨 살게 하는 정책), 사민정책, 호패법실시, 향,소,부곡을 제도상 폐지, 주자소 설치-계미자, 사섬서설치-저화발행, 한양재천도, 억불숭유책, 5부학당, 신문고, 악법(서얼차대법, 재가금지법)제정, 실록편찬, 속육전·원육전편찬, 무역소 설치, 거북선 건조, 사서편찬, 아악서 설치

<세조의 치적>

계유정란으로 집권, 사육신(성삼문, 이개, 박평년, 하위지, 유성원, 유응보)를 제거하면서 즉위, 이시애의 난(유향소 폐지, 중앙집권제 강화), 상평창부활, 과전법 폐지(직전법 실시), 팔방통보 발행, 불교장려, 양잠장려, 호적사업, 호패법, 인지의 발명, 경국대전 착수, 활자(을해자, 을유자), 5위도총부 설립하고 진관체제를 확립하여 군사제도 정비
유향소는 수령을 보좌 감시하며, 6방을 감찰하고 농민을 교화, 통제
향청은 수령이 임명, 농민을 통제, 수탈
유향소와 향청을 혼용하여 씀
경저리는 중앙과 지방의 연락, 영저리는 지방과 지방의 연락

<조선의 중앙관제와 관품>

이조-문관의 인사와 공훈·고과·공문
호조-호구·조세, 어염·광산·조운
예조-과거·제사·인사·학교
병조-무관의 인사·국방·우역
형조-법률·소송·노비·형옥
공조-파발·토목·건축·개간

삼관~예문관, 교서관, 홍문관
사관~예문관, 교서관, 승문원, 성균관
경연청(왕 강의), 서연청(세자 강의), 상서원(옥쇄관리)

업무분담기구~속사, 업무 지휘감독~속아문
※이조의 속사-문선사, 고훈사, 고공사
이조의 속아문-상서원, 종부시, 사옹원, 내시부, 내수사

삼법사~한성부, 형조, 사헌부(업무지역에 제한 없음)

지방행정조직중 4부는 개성, 강화, 수원, 광주 이들은 비변사에 참석가능
개성, 강화는 종2품이고 수원, 강화는 정2품

향도는 신라시대에는 불교적 신앙단체였으나 고려 전기는 대규모, 고려 후기는 소규모 모임이고 조선 전기는 향촌공동체, 후기는 신분제적 강제성을 약화하는 경향이됨
대가제는 정 3품 당하관이상, 서경권의 대상은 정5품 당하관이상인자
종6품부터 수령

<조선의 과거제도>

수공업자, 상인, 무당, 노비, 서얼을 제외하고 양인이상이면 응시가능
고려 시대보다 좁음
식년시(3년), 증광시(나라에 큰 경사), 별시(나라에 특별한 행사), 알성시(왕이 성균관의 문묘를 참배한 후에 실시), 백년시(시골 유학생의 학업권장)
부정기 시험이 더 많아서 인플레가 일어남
문관시험~생진과(소과)-백패를 줌, 초시에는 생원시, 진사시에서 각각700명을 선발하고, 복시에서 각각 100명씩을 선발, 총 200명이 선발됨
문과(대과)-홍패를 줌, 초시(100명), 복시(33명), 전시에는 등급만을 나눔
무관시험은 장원이 없고, 소과 대과의 구분이 없음, 초시(200명), 복시(28명), 병조에서 관장, 무과합격자를 선달이라 함
잡과는 양반의 서자와 중인계급의 자제가 응시
문음(2품이상의 자제), 하급관리 선발시험에 취과, 서리선발 시험에 이과 등
현량과는 초야에 은둔하고 있는 인재를 추천에 의함
과거제 폐지~1894년 갑오경장에 폐지

행수제~관직겸직시의 칭호 (어떤 사람이 자기 보다 낮은 관직을 받았을때 행을 붙이고, 자기보다 높은 관직의 일을 얻게되면 수를 붙임)
한품서용~기술관·서얼은 정 3품까지, 토관·향리는 정5품까지, 서리·기타는 정7품까지만 승진할 수 있는 것

<법률의 정비>

고조선의 8조법금 중 3조목만 전함(사형, 상해, 절도, 간음(추측))
부여는 4대금법, 고조선과 사형과 절도만 공통됨, 감옥이 있음
고구려는 감옥이 없음, 부여와 공통점은 절도(일책십이법)
백제는 고이왕때 율령제정, 신라는 법흥왕때 율령정비
고려때 일상생활과 관계되는 것은 대개 관습법을 따름, 형벌은 태, 장, 도, 유, 사 가 있고 강상죄는 연좌제, 형법은 당률을 참조하여 71개 조항으로 만듦
법전~조선경국전(태조)➜경제육전(태조)➜속육전(태종)➜정전(세종)➜경국대전(성종)➜ 속대전(영조)➜대전통편(정조)➜육전조례(고종)➜대전회통(고종)

조선의 담당관청은 삼법사(한성부-토지·가옥에 대한 소송, 형조, 사헌부)
노비는 장예원에서 담당
형법은 경국대전의 형정과 명의 대명률에 따르고 민법은 관습과 주자가례에 따름
경국대전은 행정법이 중심

<조선시대 세법의 변천>

손실답험법(태종 1401)~관리가 직접, 답사하여 측정, 공정을 잃기 쉬움
공법(세종 1430)~수년간의 수확고를 평균하여 부과, 답험손실법과 병용
전분6등법(수등이척법 세종 1444)~연분9등법, 전분6등법을 함께 시행, 전제상정소
영정법(인조 1635)~양척동일법시행, 1결당 4두씩

과전법(태조 전·현직관리, 1대원칙, 계구수전(1/10세))➜직전법(세조)➜관수관급제(성종)➜ 직전법폐지➜녹봉제
고려시대에는 조·세가 구별이 없었고 조선시대에 조·세가 나타남
조는 농민이 관리에게 주는 것이고 세는 관리가 국가에게 바치는 것




<대동법>

상공과 별공, 진상이 있었으나 상공만이 대동법으로 변함
대동법의 실시 목적은 대납과 방납의 비리, 전후의 재정궁핍, 공물의 납부와 수송의 불편, 개선필요, 경저리등 지방관리의 방납의 폐시정 필요, 국가 수요품과 공물의 불일치
현물의 수급단위는 호 단위 였으나 토지 단위로 바뀜
대동법의 가장 큰 의의는 호단위에서 토지 단위로 바뀌었다는 것임

조광조의 주장➜이이의 대공수미법➜광해군때 이원익의 건의에 따라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인조 강원도 시행➜효종 김육건의로 충청도·전라도 시행➜숙종 허적건의로 전국적 실시, 잉류(함경도·평안도 제외)
국가수입증대, 무전농민의 부담감소, 공인으로 인한 폐해커짐, 현물징수 사라지지 않음

<조선시대 수공업과 광업의 발달>

15C 관영수공업은 부역제를 토대로 운영
16C 전후 장인들의 등록 기피와 정부의 재정 악화 및 사장의 대두
18C말 정부의 장인등록제 폐지, 심지의 관영 수공업장에도 사장 고용, 수공업자들은 장인세를 부담하는 납포장으로 자유 생산 활동

광산의 개발~ 국가운영➜사채허용➜설점수체, 사채금지➜수령수세제와 덕대제

<조선후기 상업과 무역활동>

국가가 경시서를 두어 시전상인을 감독하고 시전상인은 도중이라는 조합을 두어 사상들을 감독함, 도중이 금난전권을 가지고 있음
※육의전(관허상인)~어물, 저포, 면포, 종이, 비단, 명주
대청무역에서 은은 수출품이나 대일 무역에서 은은 수입품

※시전상인은 황국중앙총상회를 결성하여 독립협회와 함께 이권수호 운동을 함

어용상인~공인, 시전상인, 육의전, 보부상
사상~객주, 여각, 경강상인, 송상, 만상, 내상, 종루·이현·칠패 등에 근거지 마련하고 시전과 대립

<조선시대 과전법의 특징>

현직·구직(직·산관)관리에게 지급, 사대부에 유리한 개혁, 농민보호정책
전호는 경작권을 매매·양도할 수 없었고, 노비와 승려는 수전대상에서 제외
공전~내수사전(왕실경비충당), 학전(성균관, 4부학당, 향교), 둔전(군대,관청의 경비), 공해전(중앙관청의 경비), 늠전(지방관서의 비용충당)
사전~과전, 공신전, 별사전(준공신에게 지급, 3대까지 세습, 경기 외에도 지급), 군전(부경시위 조건으로 지방의 한량에게 지급), 사원전
전시과는 전지와 시지(임야)지급, 전국대상, 과전의 국가 수조, 수주권적 지배가 소유권적 지배보다 강함, 5품 이상에 공음전, 외역전·군인전 지급 , 전조와 전세가 구별 안됨
과전법은 전지만 지급, 경기지방내에 지급이 원칙, 과전의 직접수조, 수조권적 지배가 현저히 약화, 공로자에 공신전과 별사전 지급, 외역전 폐지, 군전 지급, 국가의 전세 징수

전시과와 과전법의 공통점은 왕토사상으로 원칙적인 소유권은 국가에, 수조권의 귀속여부에 따라 공전과 사전 분급, 과전은 18등급에 따라 구분하여 지급, 현직·구직 관리에게 모두 지급하였으며 1대에 한하는 수조권 위임
※조선초기 과전법의 지목중 경기 외 토지에도 지급된 것은 ~ 별사전

<중세의 토지제도>

고려는 조세의 구별이 없고 국가가 수조를 해서 관리에게 녹봉을 줌
조선은 조세의 구별이 있고 관리가 직접 수조, 조는 1/10, 세는 조*1/15
수조권에 기초한 것이 전주전객제 이것은 임진왜란때 폐지되고, 소유권에 기초한 병작반수제(지주전호제)가 생김
※신라의 녹읍은 사림에 농민에 대한 지배력을 가장 강력하게 행사 할 수 있었다. 노동력 까지 가능
공전이란 경기도를 제외한 토지로서 국가가 직접 조를 받는 토지, 수조권이 국가에 귀속된 토지이며 대부분의 일반농민이 소유하고 있던 미전을 국가가 징세대상으로 파악한 개념이다 사전이란 경기도에 한한 토지로 수조권이 개인이나 관청에 속한 것이다.
농민의 사유지인 민전은 소유권상으로는 사전이지만 수조권상으로는 공전. 공전이라 칭함

<사림파의 계보와 붕당>

훈구파~중앙집권과 부국강병, 막대한 토지 소유, 왕도+패도주의, 민간신앙을 포용, 군사학, 기술학중시, 사장 중시, 격물치지, 경험적 학풍, 치인지학의 추구, 자주민족의식(단군신앙)
사림파~향촌의 건설과 교육, 향촌자치강조, 양약실시 주장, 중소지주층, 왕도정치 강조, 이단배격, 기술천시, 경학중시, 인간의 심성연구, 서변주의 관념적 학풍, 수기지학 추구, 중국중심의 화이사상
영남학파(동인)-주리파
기호학파(서인)-주기파

※붕당정치란 성리학적 정치운영의 한 형태로 상호 비판체제의 사림정치이다
붕당의 장점~책임정치, 비판세력 공존(부패감소), 산림의 의견반영, 일당독주 견제

당쟁의 시작은 이조전랑직을 둘러싼 김효원(신세력), 심의겸(구세력)의 대립~이이의 조정책실패
당쟁의 격화
제1차 복제문제(예송논쟁)~서인집권, 제2차 복제문제(예송논쟁)~남인집권,
경신대출척~서인집권, 기사환국~남인집권, 갑술옥사~소론득세, 신임사화~소론집권,
이인좌의 난~노론집권
<<12경기갑신이-서남서남소소노>>
※경신대출척이란 서인이 남인을 숙청한 사건이다.
※붕당정치의 원칙이 깨어지고 일당전제로 흐른 계기가 된 것은 경신환국...

<4대사화 사림파 대 훈구파>

명칭 발생연대 원인 발단 가해자
무오사화 연산군4년 훈구파대 사림파 조의제문·
사초문제
이국돈·유자광
갑자사화 연산군10년 궁정세력 대 정부세력 윤씨패출사건 임사홍
기묘사화 중종14년 조광조등 신진사람파 대 훈구파 위운삭제·
모반음모의 모략
남곤·심정
을사사화 명종원년 왕실외척인 대윤 대 소윤 왕위계승문제 윤원형


무~조~돈
갑~윤~임
기~위~심
을~왕~원

조광조의 개혁정치~현량과 실시(사림들을 무시험 추천에 의해 관리등용), 위훈삭탈, 균전론(토지소유 조정), 한전론, 불교·도교행사 금지(승과제도, 소격서 폐지), 공납제도 폐단 시정 주장, 유향소 철폐, 향약의 전국적 시행으로 향촌자치제 강화, 사마소 설치, 이조·병조의 전랑에게 인사권 처리와 낭천권(후임자 추천권)을 가제게 하였다. 언문청(한글보급)

<이황과 이이>

이황~ 주리파, 이기이원론, 예안향약, 백운동 서원, 도산서원, 상학십도, 주자서절요, 일본성리학에 영향, 유성룡·김성일·정구, 장수(理)와 졸병(氣)➜동인
이이~ 주기파, 이기일원적이원론, 해주향약, 서원향약, 소현서원, 만언봉사, 10만양병설, 동호문답, 대동법주장, 성학집요, 경연일기, 격몽요결, 사창계약속(사창제도+향약), 정엽·김장생·성혼·조헌·송시열, 탕평일임자➜서인

※성리철학의 공통점
이와 기에 있어서 이를 일차적으로 중시하는 주리적 이기론이라는것
우주자연의 질서와 인간사회의 질서를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천인합일론
인간의 본성은 착하나 수양에 의해서만 달성된다는 것
모든 사물을 대립·투쟁으로 보지 않고 조화와 통일관계로 생각하는 것

절대적 관념(정신) 객관적 경험(현실)
만물생성의 근원 만물 구성요소
태양 태양의 에너지
보편성 차별성
불교 화엄종의 영향 도교의 영향


<사단칠정논쟁과 호락논쟁>

4단 7정논쟁은 이황과 기대승간의 논쟁
이황은 4단은 리로 되어있고, 7정은 기로 이로어져 있다고 주장

호락논쟁은 노론내부에서 생긴것
인물성동론~서울노론(낙론), 리의 중요성 강조(주리론)
인물성이론~충청도노론(호론), 기의 중요성 강조(주기론)

사단칠정은 조선의 성리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 논쟁을 계기로 성리학파가 형성되었다.
율곡이이는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에서 발한 것이라고 하였다.
사단과 칠정은 모두 마음의 작용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임진왜란(1592~1598) 당시의 의병의 항쟁>

의병의 조직~사림과 승려 cf> 한말의병장은 유생, 평민
의병의 전술은 유격전술
※대표적 의병장
곽재우~의령(홍의장군, 최초의 의병장), 정인홍~합천, 조헌~옥천, 고경명~장흥, 김천일~나주, 홍언수·홍수남~수원, 정문부~경성에서 기병하여 길주 수복, 김덕령~담양, 김면~고령, 서산대사~묘향산, 사명당~금강산

※임진왜란의 영향~훈련도감 설치(명나라 척계광의 기유신서에 영향받음), 속오군 창설 (양반·농민·노비 등으로 편성), 무기발명(거북선, 비격진천뢰, 화차), 4대사고 중 전주사고를 제외하고 손실, 불국사·경복궁 소실, 동의보감, 징비록, 난중일기, 납속법의 실시가 그 원인이 됨, 이몽학의 난 발생, 삼수미세 징수, 대동법 실시의 동기 제공, 대륙에서는 명이 멸망하고 청이 일어났다. 사대사상의 고조, 정부에 대한 불신

※최초승리~옥포해전, 최초거북선~사천해전, 최대승리~한산도 대첩
정유재란(1597)~명량대첩, 이순신 최후~노량대첩
3대 대첩~한산, 진주, 행주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광해군의 실리적 중립외교➜서인의 인조반정(친명배금정책, 1623)➜이괄의 난(잔당의 조선정벌요구, 1624)➜정묘호란(형제관제, 1627)➜금의 강화, 청건국, 군신관계요구➜척화파의 거절➜병자호란(1636)
정묘호란은 금과 관계, 병자호란은 청과 관계

정묘호란의 결과 강홍립의 중재로 후금은 조선과 정묘조약을 맺고 철군
조선은 후금과 형제관계를 맺으며, 조공의 약속, 명과 후금에 대해 조선은 중립을 지키며, 중강개시와 회령개시를 열 것 등이다.

병자호란 척화파는 청을 응징하자고 강조, 이러한 주장은 성리학자들이 중시.
주화파는 청의 침략을 저지한 다음에 국력을 강화 시키자는 주장, 최명길등 양명학자들이 가담
※북벌계획을 당당한 기구는 어영청이다. 어영청은 효종이 자신의 정권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유지했다.

<영조와 정조의 치적>

영조는 노론을 우대, 정조는 남인을 우대
영조는 늙은 사람, 정조는 젊은사람 초계를 우대

영조~3대유폐(붕당, 사치, 음주), 신문고, 속대전, 무원록(법의학서), 기로과설치(60세이상의 과거), 권농정책, 노비공감법, 탕평책, 균역법
정조~제언절목, 추관지, 장용영, 신해통공, 정리자, 홍재전서(자선전), 일성록(일기), 한구자, 대전통편, 생생자, 탁지지, 규장각, 서얼발탁

※문체반정운동~정조에 의해 주도된 문풍쇄신정책의 일환
노론벽파를 견제키 위함➜박지원(패관소품체)양반전
※초계문신제도~당하관 이하 관리를 재교육에 의해 시럼을 거쳐 승진시킴

※조선후기의 학자 ‘채제공’~상업에 있어서 신해통공 실시, 정조때 문신으로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름, 재임 중 천주교 문제에 대해 온건한 정책을 유지

<탕평책의 실시>

탕평책의 실시원인~붕당정치의 문제점(극단적 정쟁, 집권욕으로 공론보다 사리에 집착, 사회분열, 왕권의 약화)
숙종때 처음으로 실시(노론 중심의 일당 전제화로 실패)
조제보합론을 실시 하려 하였음
영조의 완론탕평~온건론자를 등용, 이조낭관이 행사하던 낭천권과 천거권을 박탈
정조의 준론탕평

탕평책은 붕당간의 세력을 균형화하여 왕권의 강화를 도모하고, 정국을 안정시키려고 한 것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된 미봉책에 불과

<실학의 발생>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을 표방하는 비판적, 실천적 학문사상이지만 유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수광~지봉유설을 저술하여 천주실의를 소개함으로써 서양 문물을 소개
한백겸~동국지리지를 쓴 역사, 지리 연구의 선구자
김육~대동법 실시와 주전의 필요성 강조
윤휴~주자학 비판, 송시열의 예론을 비판하다 사형당맣
윤증~민본사상에 입각한 인간평등론 주장

중농학파~유형원, 이익, 정약용
중상학파~유수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정인홍➜이언적과 이황 비판
정여립➜군주세습제를 부인하고 천하는 공물이라 함

※성리학을 비판한 실학자
16C 정인홍, 정여립➜17C 윤휴, 박세당➜18C 정약용➜19C 최한기

※김석문의 역학도해와 홍대용의 의산문답은 지전설을 주장하여 성리학적 세계관을 비판함

<중농학파와 중상학파>

※중농학파~경세치용의 학풍, 남인학자 중심, 지주제 철폐, 농촌을 배경

유형원~반계수록, 자영농을 바탕으로 병농일치의 군사제도와 사농일치의 교육제도
사상의 한계:적서차별과 군내의 양천구별, 문음제도, 노비제도 인정
이익~성호사설, 6좀론(노비제도, 과거제도, 양반문벌제도, 기교, 승려, 게으름), 화폐 폐단 지적
정약용~여유당전서:3부작(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3논설(탕론(왕조교체의 가능성제시), 원목(정치의 근본과 목민관 강조), 전론(공동소유, 공동생산, 공동분배))
박세당~색경, 윤휴와 함께 사변록을 지어 성리학을 비판하다가 사문난적으로 몰림
홍만선~산림경제
서유구~임원경제지, 종저보

※중상학파~이용후생의 학풍, 노론중심, 지주제 인정, 서울을 배경

유수원~우서, 대상인의 지역사회개발 참여
홍대용~임하경륜, 의산문답, 균전제 주장, 신분제도의 철폐, 의산문답에서 지전설 주장
박지원~열하일기, 과농소초, 양반전, 화폐유통의 필요성, 수레와 선박의 이용, 양반문벌제도의 모순 지적
박제가~북학의, 청과의 통상강화, 수레와 배의 이용을 늘릴 것, 절약보다 소비촉진

<조선후기 실학자(중농학자)의 토지개혁안>

토지제도는 앞에 있는 토지제를 비판하면서 성장
유형원의 균전론~토지국유제원칙, 토지매매금지, 대토지 소유 방지
이익의 한전론~유형원의 균전론 비판, 영업전(소유·세습가능)은 팔지 못하게 하고 매매전은 팔 수 있게
정약용의 여전제~산천과 계곡을 경계로 30호를 1여, 공동경작, 공동소유
정약용의 정전제~여전제는 이상적인 형태라고 스스로 비판하고 차선책 제시

※이런 실학자의 개혁론이 나오게 된 배경은 지주제의 확산이다.
대토지 소유를 방지하고자 함

<양명학에 대하여>

양명학은 성리학을 비판
양명학이란 주관적·실천적인 유학체계로서 주기론적입장
전습록을 이황이 전습록변에서 비판하고 정제두가 변퇴계전습록변에서 전습록변을 비판

성리학의 사상적 한계로서 비판, 16C 중엽~17C 에 이르러 일부학자 관심(남언경, 이요, 자유, 최명길, 이수광, 허요)
18C최 정제두에 의해 학파 형성
강화 중심의 강화학파(성호학파가 아님)
남인, 소론학자+불우한 종친출신 학자
양명학의 교지는 선행후지, 지행합일, 치양지➜이기이원론 부인
이건창·박은식 등에 의해 계승·연구됨
일제 식민치하에서 박은식의 유교구신론으로 계승되었다.

<천주교 박해>

17C 에는 학문적 대상으로 들어옴. 18C 에는 종교적 입장으로.
조선인 스스로 포교되고 연구 되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 첫 소개
추조적발사건, 반회사건

사옥명 내용 처형자
3대 사옥 신해박해 진산사건, 윤지충의 모친상을 천주교식으로 하다 발각 윤지충(최초의 순교자)
신유박해 집권 벽파가 시파인 남인계를 축출하고자 탄압(정치적인 색채가 짙음) 정양용(강진유배), 황사영백서사건
기해박해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세도권쟁탈전 상재벽서 남김 오가작통법·척사윤음 발표
병인박해 대원군은 9명의 프랑스 신부 학살, 병인양요의 원인이 됨 대왕대비교령으로 천주교 금압령 이후 3년간 8000명 처형


대부분의 민중들은 천주교의 전파에 회의적이었다.
대원군은 처음부터 천주교를 박해한 것은 아니었다.
천주교의 최초의 전래자~이수광
최초의 신자~허균
최초의 세례자~이승훈
최초의 조선인 신부~김대건

<조선시대 종교 민간신앙>

태조~억불, 도첩제, 무학(한양천도의 주역)
태종~억불, 철저한 억불책, 도첩제 강화
세종~불교종파 정리, 사원전·노비제한, 궁중 내불당 짓고 신봉, 기화
세조~불교숭상, 원각사 건립, 신미(간경도감에서 불경간행)
성종~불교 억압, 출가 금지시킴

불교는 왕실이나 민간부녀자 중심으로 민간신앙의 하나로서의 역할을 수행

도교는 중국중심의 세계관이 없다
도교는 국가의 권위를 높이고 상무정신을 기르며 유교의 문약에 빠지고 사대에 치우치는 약점을 보완


<조선의 화가들>

조선전기(15C~16C) 특징~인물산수화·진취직·씩씩하고 낭만, 사군자의 발달(16C)
안견의 몽유도원도, 최경의 채희귀한도, 이상좌의 송하보월도,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17C~18C 초~진경산수화 발달, 바위산이 많은 우리 자연을 묘사
18C 정선은 우리나라의 산수를 사실적으로 그림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금강산도, 여산초당도, 입암도➜진경산수화

18C 후반~실학적 화풍, 서양화법영향, 풍속화, 민화발달
김홍도는 촉석정도, 씨름, 서당 등 배경 없는 농촌의 생활상 묘사
신윤복은 주유도, 주막도, 선유도, 여인도 등 주로 도시의 여인 묘사, 배경이 있음
강세황은 영통골 입구도, 표암유고
김수철은 산사 만종도

19C 특징~실학적 화풍 쇠퇴, 복고적 화풍

조선시대의 3대 화가는 안견, 김홍도, 장승업

순수청자➜음각청자➜상감청자➜분청사기➜순수백자·청화백자➜철사·진사백자
상감청자까지가 고려시대(청자는 귀족적임), 조선의 백자는 실용적
순·음·상·분·청·철

<조선시대 과학기술>

조선후기에 서양과학 기술문화의 전래 조선전기에는 외래과학기술의 접목이다.
조선전기~앙부일구, 측우기, 규형, 혼천의, 간의
무기제조 기술의 발달~철갑선, 비거도선, 화포, 화차, 비격진천뢰,
수학과 역법의 발달~사라센
조선후기~서양문물의 전래(곤여만국전도), 천문학 연구(김석문, 횽대용, 이익, 정약용, 일식·월식·조수간만에 관한 연구가 행해짐, 지봉유설)
동식물에 관한 연구(색경, 산림경제), 정약전이 흑산도 부근의 어류와 해산물등 155종을 연구하여 저술(자산어보)
정약용의 서양과학 기술 응용
※서양의 과학문명 수용은 조선후기 이고, 서역·중국의 과학문명 수용은 조선전기 이다.

<건축과 석탑>

백제~익산미륵사지 탑, 정림사지 5층석탑
신라~적석목곽분, 황룡사 9층목탑, 분황사 모전 석탑, 첨성대
통일신라~횡혈식 석실분, 해중릉(문무왕릉), 높은 기단위에 3층탑(불국사 석가탑, 감은사지3층석탑, 다보탑, 석굴암, 화엄사 4사자 3층석탑)

고려~외관이 높고 웅장함(주심포➜다포), 봉정사 극락전(최고의 목조건축물),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조사당, 수덕사 대웅전, 석왕사 응진전(원의 영향을 받은 다포양식, 심원사 보광전(다포양식)
흥국사지 석탑(신라계통의 양식을 계승), 현화사 7층 석탑, 월정사 8각9층 석탑, 경천사10층 석탑(목조건축양식을 본뜸, 훵에 영향 받음)

조선시대~15C:궁궐·성곽·성문·학교 건축 중심
16C:서원건축 중심
17C:사원건축 중심
18C:수원성, 평양 대동문, 불국사 대웅전
19C:경복궁 근정전·경회루
원각사 10층 석탑(경천사 10층탑의 영향을 받음, 원에 영향 받음), 법주사 팔상전(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목탑)
대한제국~독립문(프랑스의 개선문 모방), 덕수궁 석조전(르네상스 양식). 명동성당(중세의 고딕양식)

<조각·공예품의 역사>

신라의 금동미륵반가상은 일본에 영향을 줌
백제는 서산마애삼존불상
통일신라시대~석굴암, 만불산, 불상, 무열왕릉비, 상원사종(현존 범종 가운데 가장 오래됨), 봉덕사종

고려(타시대에 비해 공예가 특히 발달), 조각은 신라에 비해 뒤떨어짐, 불상에 있어서 철불 주조가 유행함, 범종, 나전칠기, 은입사
조선시대~생활필수품 중심, 값싼 재료 이용, 소박하고 견고
15C 고려자기를 계승한 분청사기가 등장하고 16C 청화백자, 칠사백자, 진사백자 등이 발달

<조선시대 의학서적 및 각종 서적>

세종(향약채집월렴, 향약집성방, 태산요록(산부인과의서), 신주무원록(법의학서))
서거정의 동국여지승람은 전하지 않음, 역대제왕혼일강리도(태종, 세계지도)
신숙주이 해동지리지는 우리나라 사람이 쓴 것임

역사지리지~정약용의 아방강역고
인문지리서~이중환의 택리지(팔역지 라고도 함), 각지방의 것을 훙미있게 서술
지도 제작~정상기의 동국지도(백리척의 축척법을 사용)
‘언해’ 가 들어간 것은 한글서적임

<조선왕조 실록 및 기타 사서>

현존하는 실록은 조선왕조 실록 밖에 없음
선조·현종·경종 은 수정 실록을 함께 갖고 있다.
사초와 시정기는 일급문서로 사관이외에는 어떠한 사람도 열람 불가
사초는 사관이 국왕 옆에서 기록한 것이고, 시정기는 각 관청의 문서를 종합하여 춘추관서 작성
선원록~조선왕실의 족보, 숙종때
※폐위된 임금은 ‘일기’라 했다. 실록이 편찬 완료된 뒤에 수정·개수 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의 역사서>

성리학적 사관(고려국사, 동국사략)➜자주적 사관(15C,고려사 절요, 동국통감)➜존화주의 사관(16~17C, 기자실기, 동사찬요)➜민족주의 사관(18C~, 동사강목, 해동역사)
※동국통감은 사대주의적이기는 하나 단군을 민족시조로 설정
한치윤의 해동역사~중국등 외국의 사서를 인용하여 기전체적 분류사
대동야승~17C 중엽까지의 야사, 야담을 모은 야사집, 용재총화, 필원잡기, 패관잡기

신채호의 독사신론, 박은식, 정인보 등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한국사를 체계화하고 민족주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였다.

<글씨의 역사>

구양순체, 왕희지체는 고려전기에 발달, 고려 후기는 조맹부체가 발달
최우, 유신, 탄연은 구양순체. 최우, 유신, 탄연은 고려시대 김생은 신라 사람
훈련도감자와 생생자는 목판, 춘추강자는 철판

<음악의 역사>

향가는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가 전함.
보현십원가는 고려시대 만들어짐.
향가는 승려와 화랑이 지었기 때문에 불교적 색체를 띰
한말에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에서 상영

<삼정의 문란>

전정~은결, 진결, 도결, 백지
군정~족징, 인징, 강년채, 백골징포, 황구첨정, 마감채
환곡~늑대, 탄정, 반작, 가분, 허류
※16C 전정문란, 17C 공납문란, 18C 군역문란, 19C 환곡문란 극심

<홍경래의 난과 진주민란>

홍경래의 난은 민란의 선구적 역할, 다양한 계층, 평안도 가산에서 일으켜서 정주성에 웅거
난은 처음에는 광산노동자가 주였으나 후에 농민이 주력이 됨
진주민란~진주목사 홍병원의 가혹한 탐학이 원인, 농민 반란의 전국적 확대를 일으킴
암행어사를 파견하고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바로 잡고자 했으나 실패
※신·구향의 향전에서 신향이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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