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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경북 상주에서 가볼만한 역사 여행지로 꼽히는 상주 흥암서원과 주변 관광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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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역의 대표적인 곳을 떠올려보라 하면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대구? 저는 상주를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상주에서 태어나 자라 온 곳도 아닌데 상주로의 여행을 즐기며 보고 느꼈던 모습들이 긍정적인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었나 봅니다. 자전거의 도시, 삼백의 고장이라 불리는 상주 여행을 계획하며 떠난 곳은 영남지역 기호 학맥의 대표 성격을 지닌 흥암서원입니다.





상주는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인구 27만 명 이상을 자랑하는 경상북도 서부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전형적인 농촌 기반의 도시이지만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청주시 등 1시간 정도면 오고 갈 수 있는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이기도 합니다. 상주의 대부분은 낙동강 수계에 속하지만 화령 서쪽 지역은 금강 수계이며 화북면 일부는 한강 수계로 들어간다고 하니 흥미가 유발되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주시 연원동의 고즈넉한 마을에 영남지역의 기호 학맥을 이어가던 서원이 바로 흥암서원입니다. 서원으로 통하는 솟을대문은 다른 서원들의 달리 대문의 이름이 적힌 현판이 보이지 않습니다.


서원 내로 들어가면 '흥암서원'이라는 현판으로 이곳이 흥암서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서원의 강당에 해당하는 곳으로 진수당인데, 흥암서원은 동춘당 송영길 선생을 기리기 위해 숙종 28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이후 숙종 42년에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하사받아 사액 서원이 되었습니다.





숙종 시대에는 퇴계학의 주류 지역이었던 상주, 기호 학맥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염원에 설립하여 숙종 임금이 친히 사액한 현판의 글씨가 위풍당당한 기백을 보입니다. 영남지역의 기호 학맥을 이어가던 흥암서원은 상주 학맥의 기반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고려 말에 정주학이 전해 내려오고, 조선조 건국과 더불어 유교적 학풍이 적극적으로 장려되면서 유교의 학술문화가 발전하였습니다. 기묘사화를 전후하여 많은 역경을 거쳤던 유학자들은 정치사회의 현실에 참여하는 처지에서만 아니라 산림에 은거하여 학문과 지조를 돈독히 하며 후학을 지도하는 일에 큰 가치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기호 학맥의 중심인물은 이이·성혼·송익필 세 사람이었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의 영남학파와 쌍벽을 이루며 강학을 펼쳐 각각 뛰어난 유학자들의 후학을 양성했던 흥암서원, 송준길(1606~1672)은 조선 후기 문신이며 뛰어난 학문과 바른 행실로 추천을 받아 관직에 올랐으며 김장생의 가르침을 받은 성리학자로서 특히 예학에 밝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강당의 후면에 좌우로 동재인 의인재와 서재인 집의재가 있습니다. 서원의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모양새를 살짝 벗어난 흥암서원, 유생들의 숙소로 사용되던 의인재 뒤편을 통해 집의재를 바라보았습니다.






강당을 둘러 후미로 돌아나가면 사당으로 통하는 내삼문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흥암사가 보입니다.





'흥암사'는 송영길 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흥암서원은 경북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어 관리를 받고 있으며, 대원군 철폐령에도 살아남아 있는 47개 서원 중, 하나라고 합니다. 훗날, 철폐령보다 어찌 보면 더 험난한 일을 당하기도 했던 흥암서원, 한때는 흥암서원이 상주고등학교 교실로 사용되었으며, 한국전쟁인 6.25 사변 때는 인민군이 군용 건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서원의 장판각인 활자목을 불 때는 데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현판들은 사정사정해서 태우지 않고 보존되었다는 사연이 있습니다.





정판각이라는 건물에는 서재와 목판을 보관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건물이어서인지 문이 잠겨 있어 내부를 담장 너머로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진수당의 대청마루는 오랜 세월을 묵묵히 잘 버텨오며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나뭇결들이 서로 부대끼며 내는 소리가 청각을 자극하는 짜증이 나는 소리라기보다는 따듯한 감성을 끌어내는 소리라고 해야 할까요?






서원을 빠져나와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하마비라는 비석이 보이고 외삼문이 보입니다. 이곳에 어필비각이 있으니 곧, 임금이 내린 비각이니 말에서 내려야 합니다. 하마비란 여기서부터는 말에서 내려 걸어서 이동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대문보다 더 높게 우뚝 자라있는 참나무의 자태에 한동안 시선을 빼앗기며 감상을 했습니다. 가을 가을 한 하늘과 갈변하기 시작하는 나뭇잎들의 조화로 넋을 놓고 보았습니다.





마당을 지나 걸어가면 어필비각이 있습니다. 1716년 숙종이 하사한 어서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건물로, 어필은 임금의 글씨를 뜻합니다. 귀한 것을 받은 흥암서원으로써는 영광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어필비각 안에는 숙종이 지어준 '흥암서원'이 새겨진 비가 있습니다. 흥암서원을 찾았으면 빼놓지 않고 들러봐야 할 곳 이라는 생각이 들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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