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역사

방통대, 인문 교양 등 세계 역사가 한 눈에 보이는 세계사 요약 정리 10. 19세기 시민사회의 전개

공갱! 2022. 3. 2.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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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9세기 시민사회의 전개

※ 유럽과 미국의 산업화
1. 산업혁명
1) 18세기 영국을 출발점으로 일어남
2) 각종기계의 발명과 기술 혁신
① 생산력의 지속적 발전 → 전 산업분야에 파급 → 정치,사회경제구조에 커다란 변화
3) 영국
① 가장 먼저 산업혁명이 발생할 수 있었던 이유
: 가장 일찍, 적극적으로 해상진출에 나서 국내적 안정과 발전을 이룬 것이
중요하게 작용
: 많은 물자와 함께 넓은 해외시장 확보해 국내 유효수요와 구매력 창출면에서 유리
: 농업생산성 혁신 → 식량 자급자족. 인구 증가
: 인클로저운동 → 도시로 노동력이 몰리고,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가집단이 두텁게 형성
: 청교도혁명, 명예혁명 거치면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정치적 안정
② 산업혁명을 견인한 분야: 면직물
: 방적기와 방직기 발명
: 제임스와트 증기기관- 제철, 석탄, 기계공업등에 동력으로 사용
③ 영국 산업혁명의 한계
: 기술혁신이나 기술적 발전의 논리보다는 이윤증대와 생산성 향상을 꾀하는
기업가들의 대응에서 비롯된 산물
: 그 자체의 비결이나 지적인 기반 내지 과학적 깊이는 결여되어 있었음.
→19세기 후반 다른 나라들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나갈 때
영국의 생산성은 상대적으로 저하
4) 유럽대륙의 산업화- 영국의 기계와 기술에 의존하여 모직물산업에서 목면산업으로 전환.
영국과 경쟁하기보다는 영국을 추종
① 벨기에: 플랑드르의 직물공업기반과 풍부한 철과 석탄 이용
→ 1850년경 제2의 산업국으로 비약
② 네덜란드: 철과 석탄 부족해 산업화에 낙후. 대신 벨기에에 자본 투자
③ 프랑스
: 사치품위주의 수공업 비중이 높은 전통적 생산형태와 소농, 교회, 귀족, 군대, 관료제와
같이 산업화에 부담을 주는 요소가 많아 산업화가 점진적으로 진행
산업화의 진행으로 수적으로 증대된 노동자 집단이 정치세력으로 결집
④ 독일
: 독일의 산업화는 1871년 통일된 이후 제2산업화과정을 거치면서 비약적으로 진행
: 그러나 독점증대와 함께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됨
⑤ 러시아
: 1890년대에 와서야 관료의 주도와 외국의 투자에 의존하여 본격적인 산업화 진행
: 그러나 곧 제국주의 전쟁과 사회주의 혁명에 휘말림
⑥ 미국
ⓐ 18세기말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영국에 종속
ⓑ 남북전쟁이후 북부 중심으로 국가적 단합을 이루면서 1860년대에 산업화
본격화
남부 중산계급의 형성, 광대한 영토, 막대한 자원, 농공업과 교통수단의 발전에 따른
경제혁명이 자본주의의 비약적 발전 가능케함
2. 산업화의 역사적 의미
1) 산업사회가 출현 → 풍요로운 삶의 가능성 제공하여 신석기시대 농업혁명 이후
인류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 끼침
2) 자본가 계급, 곧 부르주아지와 임금노동자계급 곧 프롤레타리아라는
양대 계급을 형성시킴.
3) 노동자와 사회주의 세력의 도전, 각종 사회문제, 경제공황, 독점 및 제국주의 경쟁등의
대내외적 동요에도 불구하고 산업화 과정을 통해 확립된 산업기술문명은 아직까지 현대사회의 본질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음

※ 19세기 제반 이데올로기의 추이
19세기 주요 사조로는 보수주의, 자유주의, 낭만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를 들수 있음
1. 보수주의
1) 프랑스혁명과 그 사상의 기반을 이룬다고 생각되었던 계몽사상에 대한 반발로 나옴
(대표인물 - 에드먼드 버크)
2)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간의 어리석고 무모한 행동을 경계
3) 전통, 역사, 공동체를 중시.
4) 개인, 자유, 평등, 진보 등의 이념 부정하여 이에 입각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을
탄압하고자 함.
5) 보수주의 경향은 빈체제의 성립 이후 1830년 7월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지배적.
그 이후에도 19세기 유럽에 주요한 영향을 끼침
: 나폴레옹 몰락이후 다시 복귀한 프랑스의 부르봉왕조, 프로이센의 영방군주와 융커, 러시아의 차르,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을 반대하던 세력들은 모두 보수주의신봉자
6)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대립되는 이데올로기지만 때론 그 경계 모호
: 19세기 영국 양당제도, 7월왕정은 자유주의적으로 보이지만 보수주의적 경향도 있음
2. 자유주의
1) 자유, 평등, 개인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이념
2) 존 로크와 프랑스의 계몽사상가로부터 영향을 받음
3) 인간의 이성을 확신하고 출생보다는 능력을 중시하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
4) 17-18세기에 일어난 제반 시민혁명은 자유주의 발전 토양
5)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기존 국가권력과 권위 비판
→ 헌법제정, 자유선거, 대의제정부, 권력 분립등의 개혁 촉구
→ 19세기초 빈체제에 대해 저항하려는 움직임과 함께 혁명과 개혁, 민족통일 시도
6)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로 구분할 수 있음
: 정치적 의미의 자유주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도록 자극.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세력 형성에 기여
7) 19세기초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와 대립했지만 이후 점차 보수화의 경향
3. 낭만주의
1) 상상과 자발적인 감정의 고양을 중요시 했던 낭만주의는 다양하고 상호충돌되는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다소 무정형의 모습을 보임.
2) 19세기에 전개된 낭만주의 운동은 국가통합을 위한 추진력을 제공했던 민족주의를 촉구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서구의 합리주의적인 기반을 침식하기도 함
3) 계몽주의의 엘리트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동 및 민족주의적인 경향을 바탕으로
민중과 민중문화를 재발견하는 성과도 거둠.
: 헤르더, 그림형제등은 독일문화 기원 찾기 위해 민중문화 발굴 추구
4. 민족주의
1) 프랑스의 민족주의: 프랑스 혁명에서 주권을 소유한 민중이라는 개념을 제공하여
민족을 하나의 통합된 정치적 실체로 파악
2) 독일의 민족주의
① 나폴레옹의 침입을 받는 과정에서 프랑스의 민족주의로부터 자극 받음
i) 프랑스 계몽사상의 침투에 대비해 독일 고유의 문화와 정신을 꽃피워야 한다는 인식
ii) 정치적으로 통일을 달성하지 못해서 침입을 당했다는 각성
② 이에 따라 정치적 민족주의 지향
- 국가와 민족은 추구해야 할 최상의 과제
개인 및 개인의 자아는 민족 혹은 민족정신과 동일시되었고, 국가는 민족공동체의
정신을 구현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로 신성시됨.
③ 독일의 민족주의 운동은 당시 국가적 통합을 이루지 못했던 이탈리아와 마자르족의
헝가리 및 폴란드, 슬라브 소수민족들에게 자극
3) 19세기말 민족주의는 국수적이고 팽창적인 성격을 띠게 되면서 침략전쟁의
이데올로기인 제국주의로 기울게 됨
5. 사회주의(공산주의)
1) 산업화 및 자유방임의 경제질서에서 비롯한 모순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19세기 초에 출현
2) 19세기 전반의 초기 사회주의(1830년대-1848)
① 프랑스에서 처음 나타남
② 사회적 불행을 설득, 계몽, 형제애적 유대에 입각한 공동체 건설로 해결하고자 함
3) 19세기 중엽이후의 과학적 사회주의
① 사상의 차원을 넘어서서 현실적인 움직임으로 진전
② 초기사회주의를 비현실적인 관념체계라고 비판한 마르크스(맑스)와 엥겔스
그 대안으로 과학적 사회주의, 곧 공산주의를 제시
③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모순으로 말미암아 붕괴되리라고 예견
자본주의가 진전됨에 따라 사회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될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을
일으켜서 자본주의를 붕괴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게 된다고 생각
④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촉구하여 1867년 국제노동자협회,
즉 제1차 인터내셔널 조직
4) 두 노선으로 나뉜 사회주의
① 서유럽- 선거와 의회, 노조 등 합법적 제도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 방향으로 전개
② 러시아, 동유럽- 폭력과 혁명에 입각하여 일시에 사회주의를 건설하려 한
공산주의 노선 채택

※ 혁명과 반혁명
1. 빈체제 및 유럽협조체제- 1815년 나폴레옹 몰락이후의 정치적 상황
1) 빈체제의 배경
: 유럽의 군주들은 혁명의 이념인 자유와 평등을 무시.
: 프랑스 혁명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함
→ 프랑스혁명 이전의 질서가 재수립되면서 다시 절대주의시대로 교체하려는 시도 진행
2) 빈체제는 혁명정신과 민족주의 정신을 척결하는 것이 주된 과제가 되었고, 현실적인 탄압정책이 동반
3) 신성동맹과 사국동맹 등 일종의 유럽협조체제가 이뤄짐
4) 지도자 –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1세
프랑스의 재상 탈레랑 등
5) 반대세력 - 자유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
① 자유주의자들: 빈체제의 보수성에 반발
② 민족주의자들: 모든 민족이 스스로 통치되어야 함을 역설
6) 빈체제 약화
① 민족주의와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유럽의 지식인들이 적극 참여했던
그리스 독립운동이 빈체제의 결속력을 약화시킴
② 중남미가 독립의 움직임을 보이자 메테르니히가 이를 무효화시키려 했으나
미국의 먼로독트린 발표로 인해 다시 한번 빈체제에 타격을 가함
2. 7월 혁명- 빈체제를 결정적으로 붕괴시킴
1) 7월 혁명의 결과
① 7월혁명의 움직임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
②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크게 고무되어 벨기에는 입헌군주제 채택하여 독립,
스위스에서는 자유주의체제 수립
2) 이러한 분위기는 점차 쇠퇴
① 부르주아 세력이 민중속에 뿌리내리지 못함
② 사회, 경제적 후진성으로 말미암아 부르주아지, 즉 자본가계급의 세력이 미약
3. 2월 혁명(1848)
1) 자유와 민족의 독립을 추구했던 유럽 전체의 봉기. 그 출발지는 프랑스
2) 혁명이전의 프랑스의 상황
: 프랑스 혁명 이후 지속되어온 정치적 동요, 흉작, 재정적 위기, 실업 등이 사회불안초래
: 선거권 확대 움직임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기폭제가 됨
→ 부르주아, 사회주의 세력, 노동자 세력이 결집하여 봉기를 일으킴
→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지로 확산
3) 실패
① 독일은 통일운동이 무산되었고, 마치니를 중심으로 청년이탈리아당이 주도했던 이탈리아의 민족운동,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독립운동도 비슷한 양상으로 좌절
② 국가권력의 물리력 앞에서 무력함이 증명
③ 중산층의 자유주의 세력과 노동자의 연합은 임시적임이 드러남
※ 각국의 역사전개
1. 19세기 영국
1) 정치
① 7월혁명의 자극을 받아 선거법 개정 단행(1832)
② 자유당과 보수당 양대정당 성립→정당정치에 입각한 의회정치라는 원칙확립
③ 차티스트운동
i) 선거법 개혁에 노동자들이 협조했으나 선거권은 산업자본가에게는 확대되었으나 노동자들에게는 미치지 못함
→ 노동자들이 참정권을 요구하는 차티스트 운동을 전개하여
인민헌장(근대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이룸) 작성
ii) 이 운동은 실패했지만 인민헌장의 원직은 선거법 개정으로 실현되어 감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시정책도 강구. 공장법제정. 20세기초에는 국민보험법으로 의료보험과 실직보험제도 마련
2) 경제
① 참정권을 획득한 산업자본가들이 곡물법, 보호관세, 항해조례등을 폐지해
자유방임주의의 원칙 확립
3) 언론, 출판의 자유 및 교육도 확산 → 복지국가로의 길을 열게 되었음
2. 19세기 프랑스
1)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시련과 동요를 거치면서 단계를 거쳐 점차적으로 정착
① 복고왕정(1815-1830): 절대주의적인 부르봉왕조가 복귀
i) 귀족이 의회와 관직에 대거 충원. 가톨릭교회는 국교의 지위받음
ii) 선거권자는 10만명에 못미침. 농민과 도시서민 소외
iii) 샤를 2세는 선거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승리하자 의회해산. 새로운 선거법 제정하여 부르주아의 선거권 박탈→ 이에 반발하여 7월혁명 발생
② 7월왕정(1830-1848): 상층 부르주아에 국한된 제한선거로 이루어진 입헌군주정
i) 자유주의적인 외관과는 달리 소수 부르주아가 주도한 매우 보수적인 체제
- 유권자는 성년남자의 3%. 실질적 지배집단인 부르주아의 자유와 이익 대변
→ 사회주의자를 비롯한 급진세력이 2월혁명 일으킴
③ 제2공화정(1848-1852): 보통선거제
i) 초기에는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 및 노동권 보장. 실업자 구제를 위한 국립작업장 설치. 그러나 성년남자의 보통선거로 구성된 제언의회는 온건한 공화파가 압도적 다수로 진출
→ 사회주의와 노동자세력 크게 위축. 6월 폭동 일으키나 진압
ii) 6월 폭동에 대한 반감으로 보수적인 지배층과 농민층은 루이 나폴레옹을 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시킴. 루이 나폴레옹은 쿠데타로 독재권 장악하고
국민투표에 의해 나폴레옹 3세가 되어 제2제정 수립
④ 제2제정(1852-1870): 제2공화정을 쿠데타로 전복한 루이-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3세)가 상층 부르주아와 보수 농민의 지지에 입각하여 수립
i) 나폴레옹 3세: 보나파르티즘이라는 독재정치로 자유주의와 입헌적 절차 탄압.
프로이센과의 전쟁(보불전쟁)으로 패배하고 몰락
ii) 파리의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은 파리코뮌이라는 봉기를 일으켰으나
임시정부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제3공화정 수립
⑤ 제3공화정(1870-1940): 보불전쟁 실패로 제2제정이 붕괴되면서
보통선거로 수립
→ 대혁명후 거의 100년이 지난 다음에야 공화정이 안정

※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
1. 독일
1) 빈체제 수립당시 35개의 군주국과 4개의 자유시로 정비. 오스트리아에 비해 프로이센의 영향력 강화 → 민족통일에 대한 관심보다는 각 지역 제후에 대한 충성심이 우선시
2) 나폴레옹전쟁이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정치적인 민족통합에 대한 열망 증대.
2월 혁명과 함께 민족주의 열풍
3)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
: 혁명의 분위기앞에서 군대 철수. 의회개설과 자유주의적인 내각 구성 약속
4) 프랑크푸르트 회의
① 자유주의자들이 5월 헌법제정과 통일을 논의하기 위해 500명의 대표자를 소집
② 빌헬름 4세가 제안을 거절. 자유주의 세력은 통일을 위해서는 이념보다는 권력과 군대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하에 프로이센의 권력에 승복
2) 비스마르크에 의해 1871년 통일된 독일제국 수립
: 통일된 독일제국은 25개의 구가로 구성된 연방국가의 형태를 취했지만 프로이센의
군국주의와 보수적인 관료주의가 기본적 성격.
2. 이탈리아
1) 마치니: 청년 이탈리아당을 이끌었던 그의 민족주의 운동은 좌절
그러나 샤르데냐왕국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카부르에게 이어짐
2) 샤르데냐의 수상 카부르가 통일사업을 추진
3) 가리발디가 합세함으로써 1861년 이탈리아 공화국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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