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문화사

쉽게 쓴 미용학과, 미용사 실기 및 교양 미용문화사 정리 82. 개화기 및 근·현대의 문화 3

공갱! 2024. 2. 2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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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개화기 및 근·현대의 문화 3

 

■ 개화기 및 근∙현대 복식


2. 여성 의복의 종류별 특징


(1) 두식
개화기를 맞이해도 나라가 존속하고 있는 동안엔 궁중양식이 그대로였고, 조선
후기에 예장에 필요했던 '어여머리', '큰머리'도 그대로 존속하고 있었음
처녀들은 댕기머리였고, 부녀자들은 기호를 중심으로 이남은 쪽진머리, 서북은
얹은머리를 하였음
1907년 최활란이 당시 동경에서 유행하던 '팜프도어'(히사시까미)를 하고 돌아와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였으나 오래가지는 못함
1920년대 미장원이 생겼고, 첫 미용사는 오엽주로 일본에서 미용을 배워
화신백화점에서 미장원을 개업함

 

(2) 예복
조선시대 예복으로 왕비의 적의, 활옷, 원삼, 당의와 스란치마, 대란치마 등이 있음
개화기를 맞이했다 하더라도 왕조의 명맥이 유지되어 궁중예복 및 상류층의 예복은
그대로 존속하였음
한일합병으로 왕비의 법복인 적의는 존재를 볼 수 없게 되었으며, 그 밖의 예복은
끈질긴 전통과 함께 구식혼례 또는 수연에서 볼 수 있음

 

(3) 평상복
평상복의 기본을 이루는 것은 저고리, 치마, 버선, 신으로 이 밖에 친의류에 속하는
속적삼, 단속곳, 바지, 속속곳, 다리속곳, 너른바지가 한동안은 그대로 있었음
덧입는 것으로는 배자, 덧저고리가 있었는데 이 때에 마고자, 두루마기 및 속치마가
등장하였음

 

① 저고리
1920년대 이전의 저고리는 일반 부녀자의 경우 저고리 길이가 20㎝ 안팎이었으며,
진동이 16~22㎝로 입어서 꼭 낄 정도였음
1920년대에는 일반적으로 저고리 길이, 화장, 진동, 배래, 수구 등이 넉넉해짐
1930년대 전후는 저고리 길이가 더욱 길어져 겨드랑이 밑이 13~14㎝ 정도까지
내려갔고, 진동, 소매너비, 수구 등도 더욱 넉넉해졌으며, 고름도 넓고 길어졌고,
동정도 넓어짐

차츰 저고리 길이가 길어져 나중에는 저고리가 배꼽을 덮을 만큼 길어졌으며, 긴
길이에 비해 화장이 짧은 것이 이때의 유행이었음
1940년 전후에는 고름 대신 단추를 달거나 ‘브로치’를 사용하였음

 

② 치마
일반 부녀자들의 치마에는 별 변화가 없었으나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들의 치마
길이가 활동하기 편하도록 짧아졌음
치마는 짧은 치마와 긴 치마의 이중구조로 되었고, 가정 밖에서는 짧은 치마를 입고
활동을 하다가도 집에 들어와서는 긴 치마로 갈아입었음
서양 여선교사의 양장의 간편함을 본떠 저고리를 길게 하고 치마를 짧게 해서 입기
시작했는데, 짧은 치마도 나름대로 모양이 있어 유행의 변천이 있었음

1902년에는 한흥 양복점이 처음 개설되었음
1920년대는 양복의 확산기로 양복 착용이 크게 성행하였는데 두루마기 대신
양복에 스프링 코트와 오버 코트를 입었으며 셔츠, 넥타이, 모자, 구두, 지팡이,
회중시계, 넥타이핀 등의 장신구를 갖추었음
옥처럼 깨끗한 옥양목, 개화장이라 불린 지팡이, 갓과 망건은 중절모로 바뀜
물을 깃는 질그릇 동이는 양동이(서양도자기), 양재기, 양은그릇으로 바뀜
짚이나 나무를 태운 잿물이 아니라 수산화나트륨 계열의 양잿물로 청소와 빨래를 함
금줄 손목시계, 회중시계는 사치스러운 장식이었고, 칫솔과 치약, 거울, 장갑,
화장품 등도 개화되었음

약령시장
신문 양담배 광고
1900년 소가죽 가공 모습
박가분

화신상회(화신백화점)
- 공장형태로 노동자를 고용하여 부인용 패물, 각종 장신구, 은제 문방구류를 생산하
여 판매하였음
- 제조와 판매를 맡은 경영주는 신태화로 화신상회를 세워 화신백화점의 발판을 마련함
- 1929년 대공황으로 자금압박에 시달리다 화신상회는 박흥식 손으로 넘어감

미용 정형병원 광고
화신상회
화신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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