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문화사

쉽게 쓴 미용학과, 미용사 실기 및 교양 미용문화사 정리 81. 개화기 및 근·현대의 문화 2

공갱! 2024. 2. 2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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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개화기 및 근·현대의 문화 2

베짜는 여인

■ 개화기 및 근∙현대 문화


2. 사회적 변화


1) 수공업 쇠퇴
일본, 청나라에서의 신문물 수입으로 조선의 수공업이 망함
영국제 면포인 옥양목이 들어왔는데 기존 무명과 가격차이가 없고 품질이 더 좋아
조선의 수공업이 거의 망하게 됨


2) 상업 쇠퇴
개항장의 시전상인이나 보부상들이 이문을 남겼으나 1883년 조약이 추가되어
외국상인들이 전국적으로 장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상업이 쇠퇴함
외국상인들이 정세에 어두운 조선인들을 속여 폭리를 취하거나 고리대를 받기도
하여 상업이 쇠퇴함

 

3) 농촌의 몰락
일본 상인들의 쌀을 이용한 장난(입도선매)으로 농민들이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일본의 일방적인 배상금 요구 등의 이유로 농촌이 몰락하게 됨

베짜는 여인

 

■ 개화기 및 근∙현대 복식


1. 남성 의복의 종류별 특징


(1) 두식
을미년 단발령과 망건의 사용이 폐지되면서 머리 모양과 관모가 달라짐
상투머리 대신 짧은머리, 중머리 또는 하이칼라머리를 함
관모에 있어서도 흑립만을 오랫동안 착용하였고, 의관을 소중히 여겨 이를 갖추기
좋아했던 유림촌로들은 집에 있으면서도 맨머리로 있는 일이 없었는데, 대개는
간편하게 탕건을 착용하고 정자관 같은 것을 쓰고 있었음
상투없는 맨 머리에 탕건을 쓰고 그 위에 흑립을 쓰기도 했음
이후 흑립, 망건, 정자관 등이 사라지게 됨

 

(2) 상의
① 마고자
저고리 위에 덧입는 옷으로 마괘라고도 함
원래 만주인의 옷이었던 것을 대원군이 입고나서 유행하기 시작함
마고자는 추운 지방에서의 덧저고리로 보온이 좋아 애용되었음
이후 남자용 마고자를 본떠 여자용 마고자를 만들어 입었음

 

② 두루마기(주의)
사대부 계급에서는 집에 있을 때, 민서 계급에서는 외출할 때 웃옷으로 입었음
사대부 계급에서는 집에 있으면서도 반드시 포를 입고 관을 써서 의관을
정제하였으나, 한일합병 이후에는 엄격히 이행하지 않았음
여름철에는 저고리, 바지, 조끼를 입고 봄, 가을, 겨울에는 이에 마고자를 더하는
것이 보통이었음
두루마기는 양복에 있어서의 외투와 같은 역할만을 하였음

 

③ 적삼
여름용 간이복으로 민서 계급의 상의였으나, 한복에 조끼가 도입되면서 조끼의
장점인 호주머니를 곁들여 편리한 옷이 되자 일반적으로 통용하였음


④ 조끼
우리 한복에는 없었으나 양복의 생활화로 양복의 조끼에서 본떠 만들어 입음


⑤ 토시
토시는 겨울과 여름 두 계절에 사용하였고, 겨울용은 방한구의 일종, 여름용은
시원한 바람이 들어가도록 등나무나 말총을 사용하여 만들어 입음

 

(3) 하의
① 고의
적삼과 함께 여름용으로 서민층에서 입던 것인데, 일하는데 편리하도록 만들어진 하의


② 행전
보행에 편하도록 통으로 하여 무릎 아래에 묶고 신 위까지 내려오도록 한 것으로
각반과 같은 용도의 것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그 필요성이 줄어들자 자연히 소멸함

 

(4) 요식
한복에는 필요한 물건을 지니고 다닐 호주머니 역할을 하는 것이 없어 따로
주머니를 만들어 허리띠에 매달아 사용함
주머니 외에 담배쌈지, 안경집 등이 있었음
조끼를 입게 되면서 조끼의 호주머니가 이들의 역할을 대신하게 됨

 

(5) 이식(履飾)
① 버선
1920년대 양말이 들어왔으나 나이 든 사람들은 한복에 꼭 버선을 신었고,
일반인은 버선과 양말을 혼용하여 신었음

 

② 신
대원군이 집권하게 되자 그의 생활개조시책에 따라 검소한 생활을 강조했고, 흰 신
발이나 비단 신발 대신 검소한 검정 신발을 장려했으며, 짚, 삼, 칡, 닥나무 껍질 등
의 재료를 섞어 만든 초리도 신분질서를 어지럽힌다 하여 사용금지령을 내림
관복이 양복화되면서 흑피혜, 협금혜, 목화 등이 필요없게 되었고, 각종 갓신과
짚신, 미투리 그리고 비올 때 신는 진신, 나막신 등이 일반화되었음

 

(6) 남학생 복식
1910년대에는 머리의 변화가 먼저 왔으며 깎은 머리에 학생 모자를 쓰고 저고리나
바지를 입었고, 겨울에는 주로 검정 두루마기를 입었음
고름 대신 단추를 달았으며, 학교의 표식으로 뱃지를 달기도 하였음
1915년경부터 일반인 중에 양복 신사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겨울에는 오버 코트를
입는 경우가 나타나면서, 학생복에도 양복이 생겨났으며 바지, 저고리 위에
겨울에는 오버 코트를 입거나 망토를 입는 학생이 있었음

1920년대에는 많은 학교에서 양복 학생복을 입게 되었는데, 검은색이나 회색 등의
옷감에 스탠드 칼라를 달고 앞단추 5개가 달린 획일적인 학생복이었음
양복 바지의 무릎 아래에는 활동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행전이나 각반을 차고
다니기도 하였고, 남학생 교복은 여학생 교복보다 10년쯤 빠르게 양복화가
진행되었음. 여러 학교가 거의 같은 모양의 교복이었으며 뱃지와 모자, 단추에
표시된 학교의 상징만 달랐음
1940년 전후, 전국의 학생들은 전투태세를 갖춘 옷차림으로 교련훈련을 받기도
하였고, 교사들은 국방색 모자와 국방색 양복의 전투복 차림을 했음

 

(7) 양복
개화인사들이 착용한 양복은 1870년대부터 서양 남성들이 평상복으로 입던 색 코
트(sa ck coa t)로 남성들이 양복을 착용한 것은 관복에서 비롯되었음
의복개혁은 1884년에 있었던 갑신의제개혁이었고, 당시 잘 시행되지 않다가 10년
후인 갑오개혁 때 다시 간소화가 시도되었음
1896년 4월에는 구미식 군복으로 육군복장규칙이 제정되었고 같은 해 8월에는 문
관 복장이 간소화되어 반포되었음

1899년에는 외교관의 복식을 양복화하였으며, 1900년에는 문관복장규칙이
발표되어 문관의 예복으로 양복을 입게 하였음
1900년대에서 1910년대에 이르는 시기엔 관복이 양복화되면서 상류층에서
양복을 입기 시작하였으나 가정에서는 일반인들과 같이 한복을 입었음
1930년대에는 유학생들이 귀국하면서 양복이 급격히 널리 퍼졌음

1940년 전후에는 한복과 양복을 절충하여 바지, 저고리 위에 오버 코트나 망토를
입음
일본은 창씨개명, 황국신민화 등의 정책을 수행하면서 관리들과 교원들에게 일본
국민복 입기를 강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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